취한대에서
붉게 흐르던 강에
퇴계는
칼 대신
소나무를 심었다
원혼의 울음은
솔바람이 되고
핏빛 죽계천은
푸른 학문의 강이 되었다
상처를 잊게 한 것이 아니라
상처 위에
희망을 심었다
그 한 그루 푸름이
오백 년을
살아오고 있다



붉은 피눈물을 푸른빛으로 덮다
- 소수서원 취한대(翠寒臺)
소수서원은 이상하리만큼 평화롭다.
적송 숲은 사철 푸른 향기를 품고, 죽계천은 수정처럼 맑은 물을 소리 없이 흘려보낸다. 지도문을 지나 영귀교를 건너면 소나무와 대숲 사이에 작은 정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 시절 손수 터를 다듬고 이름을 붙인 취한대(翠寒臺)이다. 정자는 작고 소박하다. 이 고요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맑게 흐르는 죽계천도 한때는 피로 물들었던 강이었다.
1457년,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거사가 실패하면서 순흥은 참혹한 비극을 맞는다. 수많은 선비와 백성이 죽임을 당했고, 죽계천은 붉은 피를 실어 십여 리를 흘러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아래 마을을 피끝마을이라 불렀고, 순흥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폐부(廢府)라는 이름 아래 이 땅은 오랫동안 역모의 땅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다.
비명은 세월보다 오래 남았다.
사람들은 밤이면 죽계천에서 원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은 이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복수를 말하지 않았다. 억울함을 부추기지도 않았다. 대신 삽을 들었다. 죽계천 언덕을 다듬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이곳에 취한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취한(翠寒)'은 푸른 소나무의 생명력과 차가운 계곡물의 맑음을 뜻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었다. 붉은 피로 기억되던 땅 위에 푸른 생명을 심겠다는 조용한 선언이었다. 원혼의 울음이 메아리치던 골짜기를 솔바람이 머무는 숲으로 바꾸고, 절망의 기억을 다시 살아갈 희망으로 바꾸려는 인문학자의 치유였다.
취한대에 앉아 물 건너를 바라보면 붉은 글씨가 새겨진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경자암(敬字岩).
주세붕이 새긴 '경(敬)' 자와 퇴계가 남긴 '백운동' 세 글자를 나란히 새겨놓았다. '경'은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일. 퇴계는 그 글자를 바라보며 제자들에게 말없는 가르침을 전했을 것이다. 공부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라고. 취한대는 쉼터이면서도 배움터였다. 강학당에서 글을 읽던 유생들은 징검다리를 건너 이곳으로 와 물소리를 들었다.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는 배움을 가르쳤고, 사철 푸른 소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지조를 일깨웠다.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스승이었다.
퇴계가 남긴 일은 정자 하나를 세운 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명종에게 백운동서원의 사액을 청했다. 현판 하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역모의 땅'이라는 낙인을 '학문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명종이 내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이름에는 '이미 끊어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얼마나 절묘한 이름인가. 한 지역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 시대의 정신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퇴계의 뜻이 그 네 글자 안에 모두 들어 있다. 그는 칼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사람을 길러 시대를 바꾸려 했다. 따라서 죽계천에는 성곽이 아니라 서원이 세워졌고, 군사가 아니라 선비가 모여들었다. 이것이 퇴계가 선택한 가장 강한 변화였다.
취한대 마루에 앉았다.
물은 쉼 없이 흐른다. 오백 년 전에도 이 길을 흘렀고, 오늘도 같은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피도 흘렀고, 눈물도 흘렀고, 세월도 흘렀다. 그러나 퇴계가 심은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상처를 지우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상처를 품고 새로운 희망을 심는 사람은 드물다. 퇴계는 역사를 잊게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위에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푸른 숲을 심었다.
취한대를 내려오며 퇴계 선생을 되새겼다.
죽계천에는 여전히 맑은 물이 흐르고, 솔바람은 변함없이 숲을 지난다. 붉은 피눈물은 세월 속으로 흘러갔지만, 그 위에 심어진 푸른 소나무는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취한대는 한 시대의 상처를 학문으로 치유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던 퇴계 이황의 가장 따뜻한 철학이 살아 있는 자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