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틀림으로 읽은 조선

 

강물은 이상한 재주가 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은 저마다 다른 빛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물은 맑고, 어떤 물은 조금 흐리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계곡을 만나면 속도를 늦춘다. 강은 어느 물도 밀어내지 않는다. 함께 흘러 바다로 간다.

조선은 학문을 사랑한 나라였다. 글을 읽고, 토론하고, 예를 배우며 나라를 세웠다. 그래서 오래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래 생각하는 것과 넓게 생각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강물만도 못할 때가 있다.

 

송시열과 윤휴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다정한 친구 사이였다.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대학자였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경전을 읽는 눈은 달랐다. 송시열은 '주자를 통해 진리에 이른다'고 보았고, 윤휴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주자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학문의 다양성이라 부를 수 있는 차이였다. 그러나 조선은 그 다름을 오래 품지 못했다. 다른 해석은 곧 그릇된 해석이 되었고, 다른 생각은 끝내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윤휴는 유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았다. 학문은 사람을 넓히기보다 사람을 갈랐고, 논쟁은 진리를 찾기보다 상대를 꺾는 일이 되어 갔다.

 

송시열과 허목의 예송논쟁도 치열했다.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실의 상복을 몇 해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오늘의 눈에는 사소한 예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왕통의 정통성과 정치 세력의 명분이 촘촘히 얽혀 있었다. 송시열은 예법의 일관성을 중시했다. 허목은 왕의 지위를 먼저 보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하들이 주도하는 명분 중심의 정치(서인)로 갈 것인가, 아니면 국왕 중심의 강력한 체제(남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대리전이었다. 나라 안에는 흉년과 전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조정은 상복의 길이 문제로 명분은 점점 커졌고 민생은 점점 작아졌다. 조선은 생각이 다르면 등을 돌렸고, 말이 다르면 마음까지 끊어 버렸다. 다름을 틀림으로 읽었고, 논쟁을 전쟁으로 만들었다.

 

그 상처는 한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많은 말을 한다.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손안의 작은 화면에서도 서로를 향한 목소리가 쉼 없이 오간다. 말은 많아졌는데 귀는 조금씩 닫혀 가는 것 같다. 여전히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무너뜨리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다. 다른 의견은 토론의 출발점이 아니라 공격의 대상이 된다. 편을 나누는 언어는 넘쳐나지만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은 점점 드물다. 다르다는 것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다르다는 것은 아직 내가 보지 못한 길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조선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자를 남겼고, 뛰어난 글을 남겼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던 아픈 역사도 함께 남겼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역사는 승자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적으로 만들었던 이유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오래된 정자에 앉아 있으면 멀리 보고 넓게 보고 오래 보게 된다. 바람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강물은 어느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강은 묵묵히 흐른다. 송시열이 바라보았던 강도, 윤휴가 바라보았던 강도, 허목이 바라보았던 강도 결국 같은 바다를 향해 흘러갔다. 강은 한 번도 어느 물줄기를 틀렸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른 물줄기가 만나 강이 되듯, 다른 생각이 만나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