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정(靑巖亭)에서


거북은
등에 정자 하나를 올리고

선비는
마음 하나를 올려놓았다

세상은
두 번이나 절개를 꺾으려 했지만

푸른 바위는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거북이 등에 올려놓은 선비의 마음
      - 봉화 청암정(靑巖亭)에서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고요하고 단정했다. 봉화의 산들은 제 높이를 자랑하지 않았고, 마을은 오래된 종가의 역사 속에서 천천히 깊은 숨을 쉬고 있었다. 정겨운 흙담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풍경 속에 수줍은 듯 숨어 있던 화려하면서도 고고한 정자 하나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청암정(靑巖亭).
처음 마주한 순간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투명한 물이었다. 둥글게 둘러진 연못 위로 정갈한 돌다리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끝에 아름다운 정자가 거대한 바위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물은 정자를 다정하게 감싸 안고, 바위는 말없이 정자를 그윽하게 떠받친다. 한 폭의 동양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했다. 청암정을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중 하나로 손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풍경은 눈을 사로잡고, 절개는 마음을 울린다. 이 아름다움은 풍경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한 선비의 곧고 청정한 생애가 고요히 스며 있었다.

청암정의 주인은 충재(冲齋) 권벌(權毤, 1478~1548) 선생이다. 조광조와 함께 도학정치를 꿈꾸었던 사림의 중심이었다. 기묘사화 때 예조판서로서 사림을 끝까지 변호하다 벼슬을 잃고 쫓겨났다. 훗날 다시 불려갔으나 을사사화에서도 권세에 굽히지 않고 억울한 사림을 구하려 목숨을 걸었다. 결국 먼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고결한 생을 마쳤다. 두 번의 가파른 사화, 낙향과 유배. 그러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바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청암정은 첫 번째 낙향의 시간 속에서 태어났다. 권벌은 세상을 피해 숨고자 한 것이 아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결코 흐려지지 않을 참된 마음 하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청암정은 단지 은둔의 정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바로 세우고 다듬는 수양의 공간이다. 충재 선생은 일찍이 시를 통해 이 공간에 담긴 심경을 이렇게 읊었다.

“신령한 거북 바위 누대를 짊어지고 푸른 물에 임하니
푸른 대나무와 청청한 소나무가 예스런 정당을 둘렀네
한적한 방에 앉아 고요히 만물의 태동을 관조하니
텅 비고 맑은 마음자리가 저절로 청량하여라” - 권벌, 〈청암정〉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절의요, 물은 유연하게 흐르는 인품이다. 거북 바위와 푸른 물, 소나무와 대숲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충재 선생은 세속의 욕망을 비워내고 단정한 내면을 다졌다.

정자를 바라보다 보면 아늑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정자가 연못 한가운데 떠 있을까. 왜 하필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웠을까.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정자를 지을 때 바위 위에 방을 만들고 온돌을 놓았는데, 불을 지피자 바위에서 괴로워 신음하는 거북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지나가던 고승이 "이 바위는 살아 있는 거북이니 등에 불을 때어 괴로워 우는 것"이라 일러주었다.

권벌은 곧바로 구들을 헐어내고 방을 정갈한 대청마루로 바꾸었다. 거북이가 편히 숨을 쉬며 헤엄칠 수 있도록 바위 둘레를 파내어 연못을 만들었다. 권벌은 자연을 이겨내거나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자연의 작은 숨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건축을 겸손히 고쳤다. 청암정은 자연을 승리한 결과가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여 함께 완성한 고결한 공간이다. 사람이 자연을 배려하니, 자연은 사람의 품격을 품었다. 이 정자는 지금도 거대한 거북 한 마리가 등에 선비를 태우고 연못을 건너는 정겨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정자에 오르기 위해서는 좁은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돌다리 밖은 세속의 번민이요, 돌다리 안은 수양의 고요다. 충재 선생은 이 다리를 하루에도 수없이 건넜을 것이다. 세상에서 돌아와 학문으로 들어가고, 권력의 소란함에서 돌아와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갔을 터이다. 이 정자의 이름을 왜 청암(靑巖)이라 했을까. 세월이 흘러 퇴계 이황 선생 역시 이곳을 회고하며 시 한 구절을 남겼다.

“바위 언덕 맑은 물은 스스로 바위를 둘러 흐르고
높은 정자는 고요히 푸른 산을 마주하였네
선생께서 한 번 가신 뒤 모습과 음성은 멀어졌으나
남기신 고결한 자취와 높은 의리는 이 바람 속에 도도하도다” — 이황, 〈청암정〉

당시에는 사화가 몰아치고 권력의 주인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바위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청암은 단지 바위의 색이 아니라, 어떤 풍파에도 변하지 않는 선비의 푸른 마음빛이다. 후학들 역시 이 물가에 서서 "백 년을 이어온 곧은 절의는 지금도 이곳에 살아 있으니, 맑은 물가에 서서 숙연히 세속의 먼지 낀 마음을 씻노라" 하고 노래했다.

청암정은 충재 권벌의 공간이자 영남 남인 학자들에게도 특별한 사유의 중심지였다. 미수(眉搜) 허목(許穆) 역시 충재의 고결한 삶을 모셨으나 안타깝게도 직접 청암정에 오르지는 못했다. 생의 마지막 끝자락인 여든여덟 살의 나이에, 그는 가만히 붓을 들어 '靑巖水石(청암수석)' 네 글자를 써 내려갔다. 선배 선비에 대한 존경을 담아 글씨를 완성한 지 사흘 뒤 허목은 세상을 떠났다. 몸은 다다르지 못했으나, 정신은 붓끝을 따라 이곳에 도착했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 연못의 맑은 물이 감싸 안은 정자 안에는 상고(上古)의 평정이 흐른다. '청암수석'의 붓길은 물줄기처럼 부드럽게 굽이치고 바위처럼 묵직하게 고여 한 편의 선화(仙畫)를 닮았다. 정제된 전서의 곡선 마디마디마다 그윽한 향기가 베어 있다.

이 고아함을 바라보고 있으면 17세기 조선 지성사의 또 다른 거장, 우암 송시열이 떠오른다. 미수 허목과 우암 송시열의 서법은 그들의 삶만큼이나 완벽한 평행선을 이룬다. 미수의 글씨가 바람과 물길을 닮아 자연스럽다면, 우암의 글씨는 단단한 벼랑을 닮아 엄격하다. 두 거장의 필치는 시련의 시대를 살았던 선비들이 도달한 서로 다른 높은 경지였으며, '청암수석'은 미수가 붓끝으로 완성한 위대한 유산이다.

청암정은 오늘날 아름다운 풍경이자 영화나 드라마 속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카메라 렌즈가 담아내는 것은 물과 정자의 어우러짐뿐이다. 정작 렌즈에 담기지 않는 것은 이 정자를 품어낸 한 사람의 고결한 마음이다. 권벌은 벼슬보다 양심을, 권력보다 절개를 선택했으며,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먼저 지키고자 했다. 청암정은 아름다운 건물이기 전에, 아름다운 삶이 세상에 남긴 단정한 풍경이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작은 정자는 여전히 거북의 등을 타고 세월의 물결을 유유히 건너고 있었다. 사람은 떠났어도 절개는 바위가 되었고, 왕조는 사라졌어도 풍류는 물이 되었다. 청암정은 그 둘 사이에서 오늘도 조용히 선비의 푸른 마음을 지키고 있다.

경산의 한 줄
세상의 풍파에 마음이 흔들릴 때, 내 안의 곧은 바위를 다듬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