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에 살어리랏다
- 청량산 청량정사(淸凉精舍)
바람마저 호흡을 가다듬는 듯 청량산(淸凉山)의 기암괴석이 푸른 하늘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서 있다. 입석 주차장에서 시작해 청량사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오르는 길. 숲이 품어내는 울창한 향내와 계곡물 소리가 세속의 번뇌를 먼저 씻어낸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힐 즈음, 연화봉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나지막한 맞배지붕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청량정사(淸凉精舍)다.
자연의 결을 훼손하지 않고 숲의 일부처럼 들어앉은 단정한 정자 앞에 서니, 백년의 시공간을 넘어 옛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오산(吾山)'이라 부르며 꿈꾸던 퇴계
청량정사의 마루에 들어서면, 먼 옛날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청년 이황(李滉)의 모습이 그려진다. 정식 기와집이 들어서기 훨씬 전, 숙부 송재(松齋) 이우 선생, 그리고 형 온계(溫溪) 이해와 함께 이 산중의 소박한 산방에 머물며 글을 읽던 시절이었다.
총각 머리를 땋아 내린 젊은 퇴계는 바위 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벗 삼아 성리학의 깊은 뜻을 새겼다. 그에게 청량산은 예안 집에서 새벽에 길을 나서면 닿을 수 있는 곳, “우리 집 산(吾山)”이었다.
후학들은 그 거룩한 배움의 터를 기려 ‘오산당(吾山堂)’이라 일컬었고, 훗날 사림의 뜻이 모여 지금의 청량정사로 단장되었다. 스스로를 ‘청량산인(淸凉散人)’이라 칭하며 산천과 교감했던 퇴계. 말년에 유학의 정성을 담은 우리말 가도(歌道), 《도산십이곡》의 아련한 영감 또한 이 고요한 오산의 산방에서 이미 그 씨앗을 품고 있었으리라.
강호에서 만난 스승
정사 앞마당에서 낙동강 줄기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청량산의 기운은 물길을 따라 농암(聾巖) 이현보 선생이 머물던 분강의 애일당(愛日堂)으로, 또 퇴계가 거처하던 도산(陶山)과 토계(退溪)로 흘러든다.
1542년, 76세의 대선배 농암 이현보는 44년의 공직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날, 42세의 젊은 관료 퇴계는 한강 나루터에서 이별의 시를 올렸다.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미련 없이 지족(知足)의 삶을 택해 귀향하는 농암의 뒷모습은, 훗날 벼슬을 끊임없이 사양하고 물러나고자 했던 '퇴계(退溪) 철학'에 결정적인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나이를 넘어선 영혼의 동반자였던 두 사람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배를 오가며 시문을 나누었다. 83세의 농암이 잊혀가던 《어부가》를 우리말 노래로 개작하여 강호의 풍류를 다듬자, 퇴계는 그 깊은 안분지족에 감동하는 발문을 썼다. 대선배가 터놓은 영남 시가의 전통은 퇴계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이는 끝내 청산의 푸르름을 노래한 《도산십이곡》으로 피어났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아니하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청산 같이 하리라
나아가고 물러남의 미학을 나누었던 두 거장의 아름다운 교유(江湖交遊)는, 지금도 이 청량산 바람 속에 그 온기를 남기고 있다.
예던길을 따라 걷다
퇴계 선생은 벼슬에서 완전히 물러난 말년에도 청량산을 잊지 못했다.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 가끔은 제자들의 손을 잡고 안동에서 봉화 청량산까지 이어진 옛길, 즉 ‘예던길(녀던길)’을 걸어 올랐다. 선생에게 산을 오르는 유산(遊山)은 곧 글을 읽는 독서와 같았다.
“독서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讀書如遊山)
산을 오르는 것은 글을 읽는 것과 같다(遊山如讀書).”
산의 높낮이와 곡절을 따라 걸으며 삶과 학문의 이치를 깨닫던 선생. 늙고 병들어 직접 오산당을 찾기 힘들어진 후에도 제자들을 청량정사로 보내 공부하게 하고 그 학업을 점검하셨으니, 이곳은 퇴계에게 영원한 '마음의 학교'이자 정신적 고향이었다. 마루 끝에 앉아 선생이 남긴 시를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뿐이로다
갈매기는 믿겠지마는 못 믿을 것은 桃花로다
桃花야 흘러가지 마라. 바깥 세상 어부가 알까 두렵구나
속세를 멀리하고 주자학적 이상향을 고요히 품었던 청량산. 붉은 복사꽃잎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나만의 비밀스러운 글방으로 삼고자 했던 퇴계의 수줍고도 엄정한 마음이 산바람이 되어 뺨을 스친다.
답사를 마치며
청량정사를 내려오는 길, 봉우리마다 감돌던 안개가 살포시 거쳐간다. 젊은 날의 열정으로 학문의 기틀을 다지던 곳, 인생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던 농암과의 교유를 되새기던 기점, 그리고 은퇴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걸었던 예던길의 마침표.
오늘 걸었던 청량정사 길은 단순한 산길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푸른 산처럼 곧게 살고자 했던 한 대유학자의 숨결과, 강호에서 피어난 선비 문화의 향기를 만나는 고결한 정화(淨化)의 여정이었다. 퇴계는 서당에서만 공부하지 않았다. 봉우리 하나를 넘을 때마다 경전을 읽었고, 계곡 하나를 건널 때마다 마음을 닦았다. 청량산은 그가 평생 다닌 가장 오래된 학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