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을 지나다가


무너진 지붕 아래
바람이 집을 기억한다

정자는 풍류를 품고
초옥은 저녁 연기를 품었다

이름은 바람에 지워져도
문지방은 발자국을 잊지 않는다

풍류를 떠받친 것은
이름 없는 서까래였다

서까래가 기억하는 시간
- 강선대 가는 길에 만난 빈집

길목의 폐허에서 들은 오래된 숨결
충북 영동 양산천의 푸른 물길을 따라 선녀가 내려왔다는 강선대(降仙臺)로 향한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물가 절벽 위의 우뚝한 정자가 아니다. 외딴 마을 어귀, 굽이진 흙길 곁에 홀로 남겨진 작은 초옥(草屋) 한 채다.
지붕의 짚풀은 오래전에 무너져 내렸고, 세월의 때가 묻은 서까래만 앙상한 갈비뼈처럼 허공을 떠받치고 있다. 칡넝쿨은 휘어진 기둥을 타고 올라 집의 뼈대를 고요히 침식해 가고, 처마가 있던 자리에는 푸른 하늘이 지붕이 되어 낮게 내려앉아 있다. 지나가는 이들은 폐가라 부르며 무심히 발길을 돌리지만, 나는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집은 사람이 머무는 거룩한 그릇이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 늙어가고, 계절의 온기와 세월의 무게가 차곡차곡 쌓이는 터전이다. 사람이 떠나버린 집은 숨겨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흙벽은 강바람에 가루로 떨어지고, 수직을 잃은 기둥은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비스듬히 늙어간다. 무너진 아궁이 구석을 들여다보노라면 깨닫게 된다. 집이란 소유하는 부동산이 아니라, 한 생애의 고단함을 잠시 품어주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쉼터라는 사실을.

이상하게도 빈집의 쓸쓸한 침묵 속에는 저마다의 정갈한 결이 있다. 무너진 서까래 틈새로 강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마른 흙냄새와 함께 잊힌 온기가 스친다. 장작을 지피며 매캐한 저녁 연기를 피워 올리던 아낙의 손길, 마당의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을을 등지고 돌아오던 가장의 무거운 발걸음…. 옛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삼남길을 걸으며 읊었던 회포가 오버랩된다.

"우물물은 여전히 맑건만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울타리 깨진 사이로 바람만 홀로 드나드네
오직 예전부터 뜨던 저 달만이
텅 빈 뜰을 쓸쓸히 밝히고 서 있도다"

이규보의 시처럼 사람은 떠났어도 유구한 바람과 달빛은 텅 빈 뜰을 밝힌다. 손때 묻어 둥글게 파인 들보는 한 가족의 고단한 하루를 묵묵히 떠받쳤고, 마모된 툇마루와 문지방은 수없이 드나든 고무신 발자국을 기억한다. 풀숲에 묻힌 깨진 사기그릇 한 조각조차 한 사람의 삶을 증언하는 역사다. 빈집은 사람이 사라진 적막한 자리인 동시에, 기억이 마지막까지 온기를 품고 머무는 숭고한 자리다.

강선대의 탁 트인 암반 위에 올라 시를 읊고 거문고를 켜던 선비들도 이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이러한 초옥을 마주했을 것이다. 정자 위에서는 고상한 문장이 피어났고, 정자 아래 초옥에서는 식구들의 목숨을 잇는 따뜻한 밥이 지어졌다. 정자는 하늘과 바람의 풍류를 노래했고, 초옥은 흙과 땀의 노동을 견뎌냈다. 둘은 결코 떨어진 삶이 아니라 한 시대를 함께 떠받쳐 온 두 개의 기둥이었다. 다산 정약용(丁若庸)은 기근과 수탈을 견디지 못해 황폐해진 마을을 보며 안타까운 애민(愛民)의 시를 남겼다.

“마을 언덕은 온통 황폐해졌고
집집마다 반 이상이 텅 비었도다
들새는 무너진 집에서 울고
거친 이끼는 깨진 울타리에 엉클어졌네"

또한 대문장가 김창협(金昌協) 역시 주인 떠난 빈집을 지나며 세상의 무상함을 읊조렸다.

"문 앞 골목은 적막하여 사람 하나 없고
뜰 앞 나뭇가지엔 낙엽만 가득 떨어지네
예전에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이 살던 곳이
이제는 그저 들판의 밭이 되어가는구나"

조선의 선비들이 마주했던 빈집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시골길에서 마주하는 정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대자연이 다시 겸손하게 들어온다. 갈라진 흙담장 틈새에서는 잡풀이 돋아나고, 서까래를 감싸 안은 덩굴은 빈집을 차분히 숲의 일부로 돌려놓는다. 인간이 지어 올린 인위(人爲)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자연은 그 스러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명을 틔워낸다. 폐허마저 품어 영원한 순환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대자연의 시간이다.

오래도록 그 빈집 마당에 서 있었다. 서까래 사이로 강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마른 옥수수댓가지들이 나지막한 소리로 서로를 흔든다. 폐허의 슬픈 신음이 아니다. 한 세월 오롯이 한 가족을 품어준 집이 세상을 향해 건네는 아늑한 인사다.

절벽 위 강선대는 시대의 높은 이상과 풍류를 기억하고 있었고, 길목의 작은 초옥은 시대의 눈물겨운 일상과 노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역사는 이름을 남긴 명사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름 없이 그 땅을 성실히 살아낸 수많은 하루가 있었기에, 한 시대의 화려한 풍류도 존재할 수 있었다. 강선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 시대를 아래서 묵직하게 떠받치고 있던 또 하나의 참된 기둥을 만났다.

경산의 한 줄
“정자는 바람의 문장을 적고 초옥은 흙의 역사를 쓰나니,
무너진 서까래가 기억하는 땀방울이야말로 풍류를 떠받친 참된 기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