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정(伴鷗亭)에서
강은 다투지 않고
갈매기는 벗을 고른다
벼슬은 강물에 흘리고
마음 하나 데려왔다
철책은 사람이 세우고
갈매기는 하늘을 잇는다
갈매기를 닮아 갈수록
내 마음도 강이 된다


갈매기를 벗 삼은 노정객
- 파주 반구정(伴鷗亭)에서
자유로를 달려 도착한 반구정은 묘한 시간의 경계 위에 서 있다. 발아래로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에는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북녘 산줄기가 희미하게 이어진다. 물은 쉼 없이 흘러가는데 사람만 발길이 멈춘다. 강은 이어 주려 하고, 역사는 자꾸 갈라놓는다. 그 언덕 위에 작은 정자 하나가 강을 바라보고 있다. 반구정이다.
'반구(伴鷗)'.
갈매기를 벗 삼는다는 뜻이다. 흰 바탕 위의 ‘伴鷗亭’ 세 글자를 가만히 읊조려보면, 정자 지붕 위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고, 그 아래에서 하얀 깃털의 갈매기 한 마리가 긴 날개를 펴며 강물 위로 내리는 모습이 환히 그려진다. 세속의 영욕을 완전히 비워낸 노재상의 유유자적한 경지가 편액에 그윽하게 흐른다. 왜 하필 갈매기였을까. 벼슬을 버린 황희는 그 답을 스스로의 시에서 들려준다.
강가로 돌아와 한 채 초당을 지으니
고요함 속 세월은 절로 유유하도다
갈매기도 의심치 않고 사람마저 적적하니
물가 구름과 시냇가 달이 함께 맑은 가을이로다
참으로 황희다운 시다. 권력의 한복판에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노년에 얻은 것은 높은 벼슬이 아니라 갈매기의 믿음이었다.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만 갈매기가 가까이 다가온다는 장자의 '압구(狎鷗)' 고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벼슬을 벗은 노정승은 비로소 사람보다 갈매기와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후대의 학자 권상하도 이 정자에 올라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임진강 강가에 자리한 반구정,
옛 정승의 거룩한 자취 아직도 푸르다
강물은 그대로 흐르고, 갈매기는 그대로 나는데
사람만 세월 속으로 사라졌구나.
권상하가 본 것은 오래된 정자가 아니라 아직도 강바람 속에 남아 있는 황희의 덕이었다. 반구정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정자는 강을 향해 지어졌지만, 황희는 강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갈매기처럼 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임진강은 그에게 풍경이 아니라 스승이었다. 강물은 다투지 않고 흐르고, 갈매기는 차지하지 않고 날아간다. 그 곁에서 노정승은 비로소 한 사람의 자연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황희를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재상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진짜 위대함은 양쪽의 말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데 있지 않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끝까지 들으려 했고, 벼슬을 내려놓은 뒤에는 자연의 말없는 가르침을 들으려 했다. 그는 정승에서 은자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또한 다르지 않다. "내 말만 옳다"는 유아독존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타인을 이해하려는 청아한 귀는 점점 닫혀간다. 그렇기에 반구정이 건네는 서늘한 가르침은 오늘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황희가 남긴 것은 우유부단함이 아니었다. 나에게 반대하는 생각조차 끝까지 들으려 했던 경청의 정치였고, 극단 대신 조화와 균형을 선택했던 포용의 지혜였다.
황희의 위대함은 결점 없는 성인이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적인 허물과 정치적 풍파 속에서도 나라의 중심을 흔들림 없이 붙들었다는 데 있다. 세종이 수차례 올린 사직을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고,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국정을 맡긴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국정을 이끄는 진정한 힘은 완벽함보다 조화로운 균형감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세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반구정에 서면 또 다른 서글픈 대비가 가슴을 흔든다.
황희가 바라보던 임진강은 고려의 개경과 조선의 한양을 이어주던 소통과 풍류의 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임진강은 철책과 초소가 강을 따라 빽빽이 늘어선 분단의 강이 되었다. 물은 예전처럼 무심히 흐르는데 사람만이 건너지 못한다. 강은 세상을 이어주려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가르고 서 있다. 문득 갈매기를 바라본다. 철책도, 휴전선도, 갈매기에게는 아무런 경계가 아니다. 자유는 날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운 데 있었다.
정자를 내려오며 오래 생각했다.
황희가 반구정에 남긴 것은 정자가 아니었다. 벼슬을 내려놓고도 품격을 잃지 않는 삶이었다.
반구정은 사람이 끝내 갈매기를 닮아 가는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