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류정에서
성은 돌로 쌓았으나
꿈은 꽃으로 피어났다
칼은 성을 지키고
꽃은 사람의 마음을 지켰다
용연은 하늘을 품고
성 안의 봄은 백성에게로 흘렀다
돌로 세운 나라 위에
꽃길 하나 내고 싶었던 왕



꽃을 품은 성곽
- 수원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수원 화성의 동북쪽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단단한 성벽 끝에 정자 하나가 바람처럼 가볍게 내려앉아 있다.
방화수류정.
이름부터 아름답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걷는다.' 송나라 유학자 정명도의 「춘일우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구름 옅고 바람 가벼운 한낮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개울을 지나네
군사시설에 붙인 이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따뜻하다. 적을 막는 각루에 칼 대신 꽃을 심은 셈이다. 이 정자는 처음부터 특별했다. 용두바위 끝에 앉은 정자는 날개를 접은 새처럼 가볍고, 아래 용연은 하늘을 고요히 품고 있다. 성벽은 굳건하지만, 그 곁의 버드나무는 바람 따라 한없이 부드럽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한 풍경 안에서 서로를 완성한다. 정조가 꿈꾸었던 나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방화수류정이 완공되던 날 지은 「상량문」은 그 풍경을 이렇게 노래한다.
긴 기둥이 물가에 얹히니 무지개가 꿈틀거리는 듯하고
푸른 물결이 실버들에 얽히니 가지마다 십 리를 흔드는구나
군사시설의 상량문이라기보다 한 편의 산수시다. 정조는 성을 쌓으면서도 먼저 풍경을 생각했다. 높은 난간에서는 별을 어루만지고, 용연에는 버드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화홍문 아래로 흐르는 물은 성곽마저 부드럽게 감싼다. 수원화성은 성이면서도 거대한 정원처럼 느껴진다. 정조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활을 쏘고, 신하들과 시를 짓고, 봄바람을 즐겼다. 그는 이렇게 읊었다.
용두바위 위에 정자 하나 새로 지으니
푸른 용연이 발아래 고요하구나
화살은 버들 사이를 가르고
퉁소와 북소리는 봄바람에 흩어진다
무와 문이 한 장면 안에 있다. 활을 쏘는 군왕이면서, 꽃을 찾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것이 정조였다. 화성을 함께 설계한 다산 정약용도 이 풍경을 사랑했다. 그는 「화성춘호」에서
영롱하게 우뚝 선 누각은 맑은 물길을 누르고
온 성안에는 봄바람이 꽃가루를 흩뿌린다
고 노래했다. 그리고 그가 제작한 화성설계도인 『화성성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성이 산천과 어우러지지 못하면 견고할 수 없고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하면 나라의 기상을 드러낼 수 없다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성을 튼튼하게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름다워야 했다. 아름다움 역시 나라를 지키는 힘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방화수류정에 올라 문득 깨달았다. 정조가 세운 것은 성곽이 아니었다. 평화를 위한 풍경이었다. 백성이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 걷고, 아이들이 물가에서 웃을 수 있는 나라.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성을 높이 쌓는 일이 아니라, 그 성 안에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아가게 하는 일이었다. 좋은 도시는 결코 높고 견고한 성벽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두려움 없이 꽃길을 걷고, 버드나무 아래서 삶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 위대한 도시가 된다.
해가 기울자 용연에는 버드나무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성벽은 여전히 굳건하고, 정자는 여전히 고요하다.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돌이 아니다. '방화수류'라는 네 글자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른다는 그 이름 속에 정조가 평생 이루고 싶었던 나라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방화수류정은 성곽 위의 정자가 아니다. 칼 위에 꽃을 심은 자리였다. 방화수류정은 서늘하고 깊은 질문 하나를 건넨다.
“그대가 꿈꾸는 나라와 삶은, 어떤 풍경을 품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