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건넌 웃음
- 김시의 〈동자견려도〉
얕은 개울가
통나무다리 사이
앙다문 입매에 움켜쥔 고집
겁먹은 눈망울 벌름대는 콧구멍
고삐 한 줄 마주하고
줄다리기 팽팽하다
산수는 잠시 길을 멈추고
웃음부터 건너간다

확대화면
감상에세이 '고삐 사이'
얕은 개울 앞에서 나귀가 걸음을 멈추었다. 물살이 깊거나 거센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몇 걸음에 건널 수 있는 물이다. 그러나 나귀에게는 그 몇 걸음이 아득한 낭떠러지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네 발로 땅을 버티고 목을 뒤로 뺀 채 한 발도 내딛지 못한다. 동자는 나귀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아니, 알 겨를이 없다. 길을 가야 하니 고삐를 힘껏 잡아당길 뿐이다. 작은 몸은 앞으로 기울고, 나귀의 몸은 뒤로 물러선다. 가려는 마음과 가지 않으려는 마음이 맞서면서, 두 존재 사이의 고삐가 팽팽해진다. 고요하던 산수 속에 뜻밖의 줄다리기가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나귀의 고집이 우습다. 겨우 저만한 물을 두고 저토록 버티나 싶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면 그 고집 뒤에 숨은 두려움이 보인다. 나귀는 심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겁을 먹은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얕은 개울이지만 나귀의 눈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경계일 수 있다. 같은 물도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우리도 때로 누군가의 머뭇거림을 고집이라 부른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답답해하고, 힘을 주어 끌면 움직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몸은 고삐로 끌 수 있어도 마음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저항하는 몸 안에는 말하지 못한 두려움이 있고, 멈춘 발밑에는 그 사람만이 아는 깊은 물이 흐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림이 무거운 교훈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동자의 안간힘도 천진하고, 나귀의 완강한 버팀도 익살스럽다. 화가는 어느 쪽도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맞서는 순간을 따뜻한 웃음 속에 담아낸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조차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삶의 정겨운 풍경이 될 수 있다는 듯이.
생각해 보면 이 그림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개울도, 동자도, 나귀도 아니다. 둘 사이에 팽팽하게 당겨진 고삐다. 그 한 줄에는 재촉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가야 하는 사정과 갈 수 없는 사정이 함께 걸려 있다. 고삐는 몸과 몸을 이어 주지만, 동시에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를 드러낸다. 나귀를 개울 건너편으로 데려가려면 고삐를 더 세게 당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잠시 힘을 늦추고, 나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바라보아야 한다. 함께 물가에 서서 두려움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일이 먼저인지도 모른다.
김시의 〈동자견려도〉는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움직이려 할 때 그의 마음도 함께 살피고 있는가. 고집이라 여긴 것 속에 두려움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그림 속 나귀는 아직 개울을 건너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작은 다리 하나가 놓인다. 이해란 어쩌면 상대를 힘껏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 그가 두려워하는 물가까지 천천히 걸어가 함께 서는 일일 것이다.

김시,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16세기 말, 비단에 수묵담채, 111×46㎝, 삼성미술관 리움, 보물 제78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