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와 깊이 사이2
삶에는 하늘같이 높은 삶이 있고, 바다같이 깊은 삶이 있다.
하늘같이 높은 삶은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삶이고, 바다같이 깊은 삶은 더 많은 것을 품어내는 삶이다. 하나는 자신을 끌어올리는 힘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낮추어 세상을 받아들이는 힘이다. 사람은 이 두 방향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다듬어 왔다.
조선의 선비들은 산에 올랐다. 산정에 올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굽이치는 강물과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 그 사이에 흩어진 마을을 내려다보며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작고도 소중한지를 헤아렸다. 높은 곳에 오르면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관계가 드러난다. 산과 강이 어디에서 만나고, 길이 어디에서 갈라지며, 마을이 어느 품에 안겨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삶도 그러하다.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 작은 실패가 세상의 끝처럼 보이고, 눈앞의 이익이 삶의 전부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더 높은 자리에서 바라보면 오늘의 실패도 긴 여정의 한 굽이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늘을 닮은 삶은 눈앞의 현실에만 갇히지 않는 삶이다. 당장의 이익보다 오래 지켜야 할 가치를 생각하고, 이미 이루어진 것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바라본다. 별을 보며 길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현실 너머에 자신을 이끌어 갈 하나의 북극성을 품는 것이다. 높이 산다는 것은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만은 아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의 욕망보다 더 큰 가치를 바라보는 일이다.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뜻이 높아지는 것이며, 타인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내다보는 것이다.
사람은 하늘만 바라보며 살 수 없다. 고개를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발밑의 돌부리를 보지 못한다. 이상만 좇다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지나치기 쉽고,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깊어질수록 다른 생각을 품을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 높은 뜻이 자칫 높은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향한 시선에는 반드시 바다를 닮은 마음이 따라야 한다. 바다는 낮은 곳에 있다. 모든 강물이 흘러드는 까닭은 바다가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맑은 물만 가려 받지 않고 흐린 물과 흙탕물까지 받아들인다. 강물이 제각기 다른 이름과 빛깔로 흘러와도 바다는 묻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 모든 물을 넓은 품에 안아 마침내 하나의 수평선을 이룬다.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꺼리는 낮은 곳으로 향한다. 물의 위대함은 높이 솟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 낮아지는 데 있다. 바다의 깊이 또한 끝없이 낮아진 자리에서 생겨난다. 깊은 삶은 많은 지식을 쌓은 삶만이 아니다. 타인의 슬픔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세상의 상처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삶이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고, 자신의 옳음을 잠시 내려놓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 함부로 밀어내지 않는 태도다. 바다의 표면에는 거센 파도가 일지만 깊은 곳은 좀처럼 흔들림이 없다. 깊이가 있다는 것은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평가와 세상의 소음이 표면을 뒤흔들어도 그 아래에 쉽게 흐려지지 않는 고요를 간직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높아 보이기는 쉬워도 깊어지기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화면 속 숫자는 사람의 가치까지 순위로 바꾸고, 끊임없는 연결은 오히려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빼앗고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보이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는 잃어 간다. 이런 시대에 깊은 삶을 산다는 것은 잠시 화면을 끄고 자기 마음의 수심을 헤아리는 일이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를 묻고, 얼마나 인정받았는가보다 얼마나 진실하게 살았는가를 돌아보는 일이다. 침묵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가장 깊은 길이 된다.
바다의 깊이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깊은 성찰이 세상을 향한 걸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고독은 은둔이 되고, 신중함은 망설임이 되며, 침묵은 무기력으로 굳어질 수 있다. 깊이는 머무르기 위한 자리보다 다시 힘차게 솟아오르기 위한 내면의 바탕이어야 한다. 나무도 그렇다. 하늘을 향해 높이 자라려면 먼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 없는 높이는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고, 햇빛을 향하지 않는 뿌리는 어둠 속에서 자라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깊이가 보이는 높이를 떠받치고, 높은 곳을 향한 열망이 깊은 뿌리에 살아갈 이유를 준다.
정자도 산정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마는 하늘을 향해 가볍게 들렸으나 기둥은 단단히 땅을 짚었고, 마루에 앉은 사람의 눈은 먼 산을 향했으나 마음은 낮은 물길을 따라 흘렀다. 정자는 높이와 깊이가 만나는 한 칸의 공간이었다.
완숙한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높이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바다의 깊이로 사람과 세상을 품는 것. 이상은 높게 세우되 마음은 낮은 곳에 두고, 멀리 바라보되 가까운 사람의 눈물을 놓치지 않는 것.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동시에 자신과 다른 존재를 넉넉히 받아들이는 것. 높이만 있는 삶은 쉽게 오만해지고, 깊이만 있는 삶은 자칫 세상으로부터 멀어진다. 높이는 깊이를 만나야 흔들리지 않고, 깊이는 높이를 품어야 앞으로 나아간다.
삶에는 하늘같이 높은 삶이 있고, 바다같이 깊은 삶이 있다. 더 좋은 삶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하늘을 바라보는 눈과 바다를 닮은 마음을 함께 지니는 데 있다. 뜻은 하늘에 닿도록 높이 세우고, 마음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깊고 낮게 하는 것. 그 높이와 깊이 사이에서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은 넓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