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지 않는 부유함, 유월의 숲에서

 

유월의 아침은 찬란한 초록의 서막이다. 도시의 소란과 '내 것', 내집, 내차, 내통장, 내주식 등을 증명하려 애쓰던 묵직한 주머니를 입구에 내려놓고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지며 초록색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곳에 오면 비로소 깨닫는다. 세상에는 가지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그들은 땅을 더 많이 차지하려 곁을 밀쳐내지 않고, 그저 제 몫의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담담히 자라날 뿐이다. 그 정직한 높이 앞에서 마음의 끈이 툭, 하고 풀어진다. 내 영토를 넓히느라 잔뜩 곤두서 있던 오감이 숲의 속도에 맞춰 느릿하게 깨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나무가 높이 자란다는 것은, 땅이라는 현실의 한계를 디디고 서서 끊임없이 초월을 꿈꾸는 인문학적 성찰을 닮았다. 메타세쿼이아가 수직으로 뻗어 올린 그 아득한 높이는, 땅 위의 집착과 수평적 경쟁에만 매몰되어 있던 인간의 시선을 본질적인 곳으로 이끈다. 옆으로 넓히는 것에만 급급한 삶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갈등을 낳지만, 위를 향해 자라는 삶은 오롯이 자신만의 하늘을 대면할 뿐이다. 나무는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넓은 그늘을 만들어 아래의 생명들을 품어 안는다. 메타세쿼이아가 보여주는 수직의 성장은 나를 키워 남을 이기려는 욕망이 아니라, 나를 극복하여 모두를 품어내는 고결한 나눔의 몸짓인 셈이다.

스카이웨이를 걸으며 나무의 어깨와 눈높이를 맞춘다. 늘 땅에 발을 붙이고 올려다보던 거대한 존재들이 이제는 다정한 친구처럼 눈을 맞춰온다. 숲의 품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아니라 '함께 흐르는 존재'가 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 감각의 문이 더 활짝 열린다. 유월의 시원한 바람을 타고 메타세쿼이아 특유의 알싸하고 청량한 피톤치드 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머리 위에서는 아침을 깨우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숲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지고, 손끝에는 스쳐 지나가는 나뭇잎의 서늘하고 싱그러운 촉감이 닿는다.

이 거대한 숲을 가꾼 이는 평생의 땀방울로 이 나무들을 심었지만, 떠날 때는 단 한 그루도 소유하지 않고 세상에 남겨두었다. 그가 남긴 것은 땅의 문서가 아니라, 자연을 온전히 즐기는 법 그 자체였다. 그 지혜를 이어받아, 나 역시 이 숲의 어떤 것도 소유하려는 마음을 버린다. 바람을 소유할 수 없고, 새소리를 가둘 수 없으며, 유월의 초록을 내 방에 들여놓을 수 없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된다.

삼림욕장 평상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숲을 나설 때 내 손에 쥐어질 나무 한 그루 없겠지만, 내 마음은 이미 유월의 푸른 빛과 싱그러운 감각들로 가득 차 넘쳐흐른다. 자연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 장태산의 아침이 내게 건넨, 가장 눈부신 가르침이다.

 

초록빛 거인들의 품에서
-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

  

초록빛 거인들의 품에서
하늘은 끝없이 높아
숲은 기둥처럼 서 있다

 
계곡의 물줄기
햇살과 초록을 엮어
황금빛 그물을 짠다
물이 너무 맑아
흐르는 시간마저 비친다

 
발밑에는 오래된 흙냄새

머리 위 새 한 마리

가지 끝에 매달려

초록 종소리를 흔든다

 
송파 선생 심은 마음은
흙 속에서 노래가 되고
그늘이 된 세월은
후손의 삶을 따뜻히 덮는다

 
돌아오는 길
오래도록
숲내음이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