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동 원림에서
옥판봉은
한마디 말도 없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계곡물은
돌을 이기려 하지 않고
돌 곁을 돌아 흐른다
백운동의 나무들은
높이 자라는 법보다
함께 그늘 드리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마당을 지나던 술잔 하나
어디로 갔을까
시를 짓던 선비들은 사라지고
물소리만 남았는데
그들의 마음은 아직 떠내려가지 않았다
수소실 기둥에 기대어
한참을 앉아 있노라니
세상을 얻는 일보다
잃지 않는 일이 더 어렵고
많이 가지는 일보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더 귀하다는 것을
흐르는 물이
조용히 가르쳐 준다.

옥판봉 아래 새겨진 무릉도원
― 강진 백운동 원림 답사기
월출산 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조용해진다.
자동차 소음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조금씩 멀어진다. 대신 대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계곡물이 돌에 부딪히는 맑은 음률이 귀를 채운다. 세상은 여전히 분주할 텐데, 이곳만은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하다. 백운동. 흰 구름이 머무는 골짜기라는 이름답게 계곡은 깊고 숲은 그윽하다.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빚어낸 푸른 그늘 아래를 걷다 보면 산속에 숨겨진 비밀의 문 하나를 통과하는 기분이 든다. 그 문 너머에는 오래전 선비들이 꿈꾸었던 작은 무릉도원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원림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멀리 솟아 있는 월출산 옥판봉이다.
거대한 바위산은 말없이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웅장한 기세를 품고 있으면서도 위압적이지 않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계곡을 지켜온 수호자 같다. 그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사람을 품는다. 산은 높고 정원은 낮다. 그러나 둘은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백운동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압도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정원은 산보다 낮은 자리에 스스로를 내려놓고, 건물은 나무보다 높아지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인 듯 겸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원림의 중심에 앉은 수소실도 마찬가지다. 처음 마주하면 다소 소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또한 그렇다.
'수소실(守素室).' 소박함을 지키는 집.
그 이름을 알고 나면 비로소 건물이 달리 보인다. 이곳에는 화려한 장식도 없고 시선을 압도하는 위용도 없다. 대신 창밖으로 흐르는 물과 숲과 바람이 주인이 된다. 수소실은 풍경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쓴다. 좁은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계곡 물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눈으로 보기 전에 귀가 먼저 물소리를 만난다. 졸졸 흐르는 물길은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술잔을 띄웠던 유상곡수의 흔적은 지금도 옛 선비들의 웃음소리를 품고 있는 듯하다. 물 위를 떠가던 작은 술잔 하나가 시 한 수를 재촉하고, 바람 한 줄기가 문장 속 여백을 채워 주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 벗이었다.
수소실 처마 밑 편액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걸려 있다. 강인하면서도 절제된 필획. 한 획 한 획이 마치 옥판봉의 바위처럼 단단하다. 추사의 붓끝은 건물 이름을 쓴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이 지켜야 할 정신을 새겨 놓은 듯하다. 소박함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가난하게 산다는 뜻이 아니다. 욕심보다 본질을 선택하고, 소유보다 향유를 아는 삶을 의미한다. 백운동은 그런 삶을 가르치는 정원이다.
물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이 원림을 처음 가꾸었던 처사 이담로가 떠오른다. 그는 벼슬보다 산수를 택했고, 세상의 명성보다 계곡의 물소리를 사랑했다.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나무를 심으며 자신의 마음을 정원으로 빚어냈다. 백운동은 한 사람의 정신이 머물던 자리였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정자는 다산의 어린 제자 동주 이시헌이 주인이 되었다. 이곳을 찾은 다산은 백운동 풍광을 잊지 못해 <백운동첩>을 남겼다. 백운동의 아름다움을 12경으로 나누어 시에 담았다. 그 중 5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담장을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
고개 돌려 다시 담장 밖으로 나가네
마침 두어 벗이 찾아오니
한가로이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화려한 연회도 아니고 권세도 없다. 그저 몇 명의 벗과 흐르는 물이 있을 뿐이다. 다산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이었다. 그의 풍류는 언제나 절제되어 있다. 사람을 많이 모으는 즐거움이 아니라, 마음 통하는 벗 두세 명과 나누는 고요한 기쁨이다. 이 시를 읽으면 유상곡수의 본질도 보인다. 술잔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서두르지 않고, 좋은 벗과 함께 앉아, 마음을 나누는 일에 삶의 가치를 두었다. 이 시는 풍류를 즐기며 여유를 노래했다.
답사를 마치고 수소실 기둥에 기대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람은 대숲을 지나와 처마 끝을 스치고, 계곡물은 쉼 없이 흘러간다. 옥판봉은 수백 년 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하늘을 받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운동 원림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인문학이라고. 선비들이 이 정원을 찾은 이유는 풍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고. 이곳을 떠난 뒤에도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건물의 모습이 아니다. 창밖으로 흘러가던 물소리와 소박함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