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류정


꽃은 이미 졌는데
누군가는 아직도 꽃을 찾고

버들은 강물에 몸을 담갔는데
누군가는 그 그림자를 따라 걷는다

성벽 끝 바람 한 자락이
오래된 이름 하나를 흔들어 깨우면

연못은 하늘을 품은 채
말하지 못한 그리움을 깊게 감춘다

돌은 성을 쌓고
사람은 꿈을 쌓았으나

세월이 모두 지나간 뒤에도
남는 것은

꽃을 찾던 발걸음과
버들을 따라가던 마음뿐

오늘 나는
그 마음이 머물던 정자 하나를 찾아간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걷는 길
     ― 방화수류정에서 만난 정조의 꿈

수원 화성의 북동쪽 모퉁이를 따라 걷다 보면 발길이 느려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성벽은 여전히 단단한데, 그 위에 앉은 정자는 놀랄 만큼 가볍다. 마치 바람 한 점이 잠시 머물다 간 자리처럼 보인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이름부터가 정자답다. ‘꽃을 찾아가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 세상에 군사시설에 붙이기에는 너무도 부드러운 이름이다. 그래서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용두바위에 올라 정자를 바라보니, 바위는 거칠고 단단한데, 그 위에 얹힌 누각은 새가 날개를 접고 쉬는 모습 같다. 아래로는 용연의 물이 고요히 하늘을 품고 있다. 바람이 스치면 수면 위에 잔물결이 번지고, 물속에 비친 성벽은 잠시 흔들리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는다.

정자는 원래 풍경을 보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지만, 좋은 정자는 풍경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방화수류정도 그랬다. 눈앞에는 성곽과 연못이 펼쳐져 있었지만, 내 시선은 어느새 이 정자에 이름을 붙였던 한 사람에게 가 닿고 있었다. 정조대왕이다. 그에게 수원화성은 특별한 신도시였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이 잠들어 있는 곳, 그리고 그 비극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자 했던 곳이었다.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품고 있었지만 그는 복수 대신 건설을 선택했다. 원망 대신 문화를 선택했고, 슬픔 대신 미래를 선택했다. 그래서일까. 성벽 위의 군사시설에 ‘방화수류’라는 이름을 붙인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칼과 창이 필요한 자리에도 꽃과 버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적을 막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평화를 지키는 일이었음을 그는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이했다. 바람은 성벽을 따라 흐르다가 용연의 수면을 스치고, 다시 버드나무 가지를 흔든다. 수백 년 전 정조도 이 바람을 맞았을까. 능행길에 올랐던 어느 봄날, 이곳에 올라 어머니와 함께 성 안팎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을까. 궁궐은 권력을 말하고, 성곽은 경계를 말한다. 그러나 정자는 쉼을 말한다. 방화수류정은 군사시설이면서도 동시에 쉼의 공간이었다. 무(武)의 공간 속에 문(文)의 마음을 심어 놓은 셈이다. 이곳에 서면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 돌과 물, 성벽과 버드나무, 긴장과 여유가 자연스럽게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조선의 정자들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 자리에 놓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방화수류정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풍경을 감상하는 장소인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상처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하는 자리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용연의 물빛이 조금씩 짙어진다. 버드나무 그림자가 수면 위에 길게 눕는다. 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
무력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걷는 삶에 대한 소망

답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마음에 담은 것은 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용연에 비친 물결도, 아름다운 지붕 곡선도 아니었다. 비극을 품고도 끝내 꽃을 이야기했던 한 군주의 마음이었다. 방화수류정은 지금도 그 마음을 바람에 실어 조용히 전하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걷는 길 끝에는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정치와,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꿈이 있다고. 그리고 그 꿈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