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구정에서
강은 서두르지 않는다
북녘 산 그림자 하나 품고
먼 길을 돌아와도
물은 끝내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갈매기 몇 마리
물결 위에 내려앉았다가
바람 한 줄기에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벼슬은 강가에 두고
이름은 세월에 맡긴 채
한 노인이 정자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얻으려 했던 것들은 멀어지고
남겨진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마음과
갈매기 한 마리의 자유
인생도 저 강처럼
가질 것을 배우기보다
내려놓을 것을 배우며
바다로 가는 길인지 모른다

갈매기를 벗 삼다
- 임진강 반구정에서 만난 조선의 풍류
정자는 대개 높은 곳에 있다.
세상을 굽어보고 풍경을 넓게 품기 위해서다.
반구정에 오르면 시선은 하늘보다 강물로 향한다.
임진강이 흐른다.
멀리 북녘 산줄기를 품고 흐르는 물은 넓고도 느리다.
강물은 급하게 달려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알고 있다는 듯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반구정은 그 강가에 앉아 있다.
마치 강의 말을 듣기 위해 지어진 정자처럼.
반구정이라는 이름은 아름답다.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
벗이란 함께 늙어가는 존재다.
벗이란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다.
노년의 황희는 왜 갈매기를 벗이라 불렀을까.
조선의 정승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정쟁과 갈등,
수많은 결정과 책임,
수많은 사람의 삶이 그의 어깨를 지나갔을 것이다.
권력의 자리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만큼 무겁다.
황희는 그 무게를 누구보다 오래 견뎌낸 사람이다.
마침내 벼슬을 내려놓고 임진강가에 앉았다.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강물은 정치보다 오래된 것이고,
갈매기는 권력보다 자유로운 것임을 보았을 것이다.
임진강에는 늘 새들이 날아든다.
강 위를 스치고,
물결 위에 내려앉고,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그들은 이름도 남기지 않는다.
벼슬도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유롭다.
반구정의 풍류는 바로 그 자유를 향한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정자에서 자연을 사랑한 것은 자연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었다.
자연은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강물은 더 높아지려 하지 않고,
갈매기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제 길을 살아갈 뿐이다.
황희는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그 사실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많은 것을 얻는다.
그러나 얻은 것만큼 잃는 것도 많다.
명예를 얻는 대신 평온을 잃고,
권력을 얻는 대신 자유를 잃는다.
반구정은 그런 삶의 끝에서 만나는 정자다.
그래서 이곳의 풍류는 화려하지 않다.
술잔을 높이 들지도 않고,
시를 크게 읊지도 않는다.
다만 강물 한 줄기를 바라보고,
갈매기 한 마리를 따라가며,
세월의 흐름을 마음에 담는다.
임진강은 오늘도 북녘에서 남녘으로 흐른다.
수많은 왕조가 사라지고,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강가에 남았지만,
강은 여전히 흐른다.
갈매기 또한 여전히 날아든다.
반구정에 서면 깨닫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 풍류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을 얻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화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황희는 정승의 이름으로 이곳에 머문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늙은 인간으로 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갈매기를 벗 삼아 남은 생을 건넜다.
반구정은 지금도 임진강 나루 위에 앉아 있다.
권력을 이야기하지 않고,
공적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흐르는 강물과 날아가는 갈매기를 보여줄 뿐이다.
마치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인생의 끝에서 함께 남는 것은
‘벼슬이 아니라 풍경이라고.’
임진강가의 반구정은
은퇴의 정자가 아니라 강물처럼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교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