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해가 막 넘어간 뒤, 아주 깜깜해지지는 않았지만 사물의 윤곽이 차츰 흐려지는 그 어스레한 어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낮과 밤 사이, 잠깐 머물다 가는 푸르스름한 시간이지요.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세상은 한 톤 가라앉습니다. 멀리 산은 검은 종이를 오려 붙인 듯 납작해지고, 골목은 푸른 잿빛으로 잠깁니다. 어느 집에서는 그제야 불을 켜고, 그 불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번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도시의 불빛이 워낙 환해서, 땅거미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하루가 밤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낮과 밤이 또렷이 갈리는 대신, 환함과 환함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지요. 그래서 이 말이 가리키던 그 잠깐의 시간도 어쩐지 우리 곁에서 옅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불을 켜기 전, 잠시 그 어스름을 그냥 두어 보면 어떨까요. 하루가 천천히 저무는 결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바쁘게 지나친 마음 한구석도 가만히 가라앉습니다. 땅거미는 그렇게 하루와 작별하는, 우리말의 나직한 인사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