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향정의 연향(蓮香)
연꽃은
향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바람이 오면
제 몸에 스민 맑음을
조용히 풀어놓을 뿐
천 년 전 최고운이 서 있던 자리
세상을 품지 못한 뜻
이루지 못한 꿈
연잎 위 이슬처럼 남아
한 줄의 시가 되고
한 칸의 정자가 되었다
그 뒤로 정극인이 와서
꽃향기를 술잔에 담았고
수많은 문인들이
그 향기 한 자락 빌려
대들보마다 시를 걸어 두었다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천 년을 건너고
정자는 말이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붙든다
피향정에 올라
향기의 시간을 만났고
한 시대의 외로운 영혼들을 만났다.

향기를 입힌 정자, 피향정


7월의 연향(蓮香), 시공을 넘어 최치원과 정극인을 만나다
- 정읍 피향정(披香亭)
7월의 한낮, 전북 정읍시 태인의 들녘은 뜨거운 열기로 출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호남고속도로 태인IC를 빠져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한 피향정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정자 앞뒤로 펼쳐진 상연지와 하연지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초록빛 연잎이 수면을 가득 덮고, 그 사이사이로 분홍빛 연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연못 위를 건너온 바람은 은은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정자로 걸음을 옮길수록 그 향은 더욱 짙어졌다.
그제야 정자의 이름이 이해되었다.
피향정(披香亭).
'향기를 풀어헤치고 들어간다'는 뜻일까. 아니면 '향기가 사방으로 퍼진다'는 뜻일까. 어느 쪽이든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향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먼저 사람을 맞이한다.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 천년의 시간을 품다
정자에 올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면에 걸린 '湖南第一亭' 현판이었다.
호남 제일의 정자. 다소 과장된 수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정자를 한 바퀴 둘러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웅장한 규모와 28개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누각은 조선 후기 정자 건축의 품격을 보여준다.
현재의 피향정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 기원은 신라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신라 말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최치원이 태산군 태수로 재임하던 시절, 이곳 연못가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정자를 세웠고, 그것이 피향정의 시작이 되었다고 전한다. 역사와 전설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보다도 후대 사람들이 이 공간에 최치원의 정신을 담고자 했다는 점이다.
난세를 살았던 천재의 고독
최치원의 삶은 찬란하면서도 쓸쓸하다.
열두 살에 당나라로 건너가 유학했고, 열여덟 살에 과거에 급제했다.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토황소격문」은 당대 최고의 문장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귀국 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영광이 아니었다. 능력보다 신분이 우선하던 골품제 사회에서 육두품 출신인 그는 끝내 정치적 이상을 펼치지 못했다.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라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7월의 푸른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변방의 태수로 내려와 이 연못가를 거닐던 최치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세상을 바꾸겠다는 젊은 날의 포부는 이미 꺾였을 것이다. 그는 좌절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자연 속에서 새로운 정신의 길을 찾으려 했다. 연잎 위에 맺힌 햇살을 바라보며, 나는 천 년 전 한 지식인의 고독한 뒷모습을 조용히 떠올려 보았다.
정극인이 노래한 '청향(淸香)'
피향정의 매력은 최치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이곳 태인은 조선 전기 가사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정극인이 은거하며 살았던 고장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상춘곡」에는 태인의 자연과 풍류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정자 마루에 앉아 연못 바람을 맞고 있으니,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다.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새 진다.”
맑은 향기는 술잔에 스며들고, 떨어진 꽃잎은 옷자락에 내려앉는다는 뜻이다.
정극인이 노래한 것은 봄날의 꽃향기였지만, 여름의 피향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연못을 건너온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꽃 향기를 실어와 마음속 잔을 천천히 채워 주었다. 피향(披香)이란 결국 향기를 맡는 행위가 아니다. 자연의 향기와 자신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경치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을 즐겼던 것이다.
천장에 매달린 또 하나의 문학관
피향정 안에 들어서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천장과 대들보를 가득 채운 수많은 시판(詩板)이다. 후대의 문인들이 남긴 시문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데, 마치 작은 문학관을 보는 듯하다. 그 시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최치원을 기리고, 피향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이곳에서 느낀 정신적 울림을 기록한 시간의 흔적들이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문인들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바람을 맞았고, 그 감동을 시로 남겼다. 오늘날 답사객이 그 아래 서 있다는 것은 결국 그 긴 문학의 계보 속에 잠시 발을 들여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연꽃이 가르쳐 주는 것
피향정 답사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맑고 은은한 향기를 세상에 전한다. 생각해 보면 최치원의 삶도 그러했다. 혼란한 시대와 신분의 한계 속에서도 그는 문학과 사상의 향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향기는 천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극인 또한 그 향기를 이어받아 자연을 노래했고, 후대 문인들은 다시 시판에 자신의 마음을 새겼다. 피향정은 그렇게 한 사람의 흔적이 또 다른 사람의 문학이 되고, 그것이 다시 문화가 되는 공간이다.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정자를 내려오며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연꽃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옷자락에는 연꽃 향기가 스며 있었고, 마음속에는 천 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피향정이라는 이름처럼, 나는 잠시 향기 속을 걸어 나온 것이 아니라 향기 속에 머물다 온 듯했다. 그리고 그 연향(蓮香)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