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먹자. 우리는 이 말을 인사처럼 주고받습니다. 언제 한번 보자, 조만간 연락할게. 말끝은 늘 훈훈한데, 달력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지요.

그런데 제게는 이 빈말을 빈말로 두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밥 한번 먹자고 하면, 그 자리에서 수첩을 꺼냅니다. “다음 주 수요일 어때.” 처음엔 그 성미가 유난스러워 보였는데, 이제는 압니다. 그 수첩 덕에 우리는 삼십 년째 끊기지 않고 만나고 있다는 것을요.

약속은 거창한 서약이 아니라, 말에 날짜를 달아 주는 일입니다. 날짜가 없는 말은 흩어지고, 날짜를 단 말은 만남이 됩니다.

언제 한번, 이라는 말속의 ‘언제’는 영영 오지 않는 날이기 쉽습니다. 미루어 둔 얼굴이 있다면, 오늘은 날짜부터 물어보면 어떨까요. 다음 주 수요일 어때,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