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찾는 갈비탕집은 늘 푸진 고기 한 그릇과 함께, 창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갑천의 풍광을 덤으로 내어주는 곳이다. 유난히 무더운 삼복더위의 한복판, 제헌절 공휴일을 맞아 아내와 나는 늦은 아침을 보내고 점심을 해결하려 그곳을 찾았다.

1층 홀은 이미 만원이었고, 2층 역시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안내로 홀 한가운데 겨우 남은 식탁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숨을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휴일의 식당 풍경은 평일의 그것과 사뭇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서둘러 숟가락을 부딪치는 직장인들이나 목소리 높은 동창 모임 대신, 그곳은 온통 '가족'이라는 이름의 풍경화로 채워져 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나온 테이블이 대부분이어서, 가만히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관계가 한눈에 읽혀왔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모자이크

우리가 앉은 자리 오른편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것 좀 드셔보세요."

생신을 맞은 듯한 아버지를 위해 두 딸이 부지런히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고기가 익어가는 사이로 오고 가는 대화가 다정했고,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봄날의 햇살처럼 주변을 환하게 물들였다.

왼편에는 아직 결혼의 풋내를 풍기는 젊은 부부가 창밖의 강물을 등진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차려입은 노부부가 다가와 앉았다. 젊은 여성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예의를 갖추는 몸짓을 보니 영락없는 새며느리였다. 말수는 적고 조심스러웠지만, 시부모를 향한 자식들의 극진한 정성이 찻잔의 온기처럼 묵직하게 흘렀다.

식사를 기다리며 힐끗 바라본 뒷자리 역시 중년의 부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모를 대접하는 중이었다. 두 어르신은 언뜻 보기에도 매우 연로하셨으나, 머리에 피어난 하얀 눈꽃과는 대조적으로 의복과 용모가 무척이나 단정했다. 한평생 자기 관리에 철저했을 노부부의 품격이 묻어났다.

이렇듯 갈비탕집의 점심시간은 현대판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수많은 가족의 웅성거림 속에서, 오롯이 둘이서만 온 식객은 아내와 나뿐인 듯했다.

 

멈춰버린 노래

식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조용하던 실내의 공기를 깨뜨리는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대화가 오가는 공간에 느닷없이 끼어든 소리. 그것은 가사도, 멜로디의 규칙도 없는 어떤 야생의 노래 같았다.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뒷자리, 머리에 하얀 꽃을 피운 단정한 할아버지였다. 웅얼거리는 듯하면서도 높은 음을 타는 그 소리가 노인의 입 벌린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노래인지, 혹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의사 표현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순간, 앞에 앉아 있던 자식 부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로 보이는 여성은 다급하게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사위로 보이는 남성은 미안함과 당혹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딸의 손길이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할아버지의 노래는 뚝 그쳤다.

사실 할아버지의 돌발적인 행동은 주변에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그저 낯선 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잠시 집중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그 짧은 시선마저 견디기 힘든 무게였을까. 그들은 이미 비워진 그릇들을 뒤로한 채, 서둘러, 그리고 아주 조용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번역되지 못한 행복의 언어

오후 시간, 농장에서 일을 하는 와중에도 내내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잔상처럼 어른거렸다.

'할아버지는 왜 가사도 없는 구음(口音)으로 노래를 하셨을까? 그 멜로디에 담긴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저녁에,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넌지시 꺼냈다. 눈미립이 좋은 아내는 할아버지에게서 미세한 치매의 그림자를 읽어냈다고 말했다. 자식들은 아마도 아버지가 앓고 있는 그 마음의 병이 타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웠을 것이고, 찰나의 시선조차 매서운 화살처럼 느껴졌을 거라고, 아내는 자식들의 입장을 두둔했다.

나는 자식들의 번민 대신 할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생각에 잠겼다.

기억의 가닥들이 하나둘 흩어져가는 흐릿한 일상 속에서, 할아버지는 아내와 둘이서 얼마나 무료하고 적막한 날들을 보내셨을까. 그러다 모처럼 공휴일을 맞아 반가운 딸과 듬직한 사위를 만난 것이다. 맛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자식들의 온기를 느끼며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할아버지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커다란 기쁨이 차 올랐을까. 그 넘쳐흐르는 만족감과 행복이, '가사 없는 노래'로 터져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노인이 세상에 외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찬가(讚歌)였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그 행복의 언어를 다급히 제지했다. 자식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방어 기제와 타인을 향한 배려였음을 십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은, 노인의 가장 행복했던 고백이 누구에게도 통역되지 못한 채 '소음'으로 치부되어 황급히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 찬란하고도 쓸쓸했던 할아버지의 언어를 나 홀로 마음속으로 번역해 보며, 이 안타까운 문장들을 세상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