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의 압구정(狎鷗亭)을 읽다
강물은 낮은 곳으로
천천히 길을 내어주는데
높이 오른 마음은
끝내 그림자를 벗지 못했다
정자는 바람을 품고
갈매기를 벗으로 불렀다
천 년을 흘러도 남는 것은
갈매기의 자유였다

겸재 정선 1741년 경교명승첩》중 <압구정>
권력은 왜 갈매기를 부러워했을까
- 그림 속의 정자, 압구정(狎鷗亭)
오늘날 ‘압구정’이라는 세 글자는 화려한 자본과 욕망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높이 솟은 빌딩과 아파트,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사람들. 서울에서도 세속적 성공의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품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오래전 이곳에는 한강을 굽어보는 정자 한 채가 있었다. 바람이 마루를 지나고 달빛이 강물에 내려앉고 갈매기가 물 위를 날던 자리. 지금의 압구정에서 그 옛 풍경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겸재 정선의 《압구정》은 사라진 시간을 다시 불러낸다.
그림 속 정자는 한강을 굽어보는 높은 언덕에 자리한다. 멀리 산줄기가 펼쳐지고, 아래로는 강물이 넓고 느리게 흐른다. 절벽과 물길 사이 작은 정자 한 채. 풍경은 넓은데 정자는 작다. 이상하게도 시선은 그 작은 정자로 모인다. 삼백 년 전 겸재가 바라본 한강은 지금보다 훨씬 유장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굽이치던 물길과 강변의 언덕, 그 위에 얹힌 정자. 오늘은 대부분 사라졌다. 겸재의 화폭을 이정표 삼아 옛 한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압구정의 주인은 한명회였다. 그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조선 정치의 정상에 올랐다. 우의정과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으며 두 딸은 각각 예종과 성종의 왕비가 되었다. 당대에 그보다 높은 권세를 누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명회를 떠올리면 한가로운 풍류보다 먼저 칼날 같은 정치가 생각난다.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권력의 중심. 그런 사람이 한강가에 정자를 짓고 뜻밖의 이름을 내걸었다.
狎鷗, 갈매기와 친하게 어울린다는 뜻이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사람이 왜 하필 아무것도 갖지 않은 갈매기를 벗으로 삼고 싶어 했을까. 이 이름 앞에 서면 임진강의 반구정(伴鷗亭)이 떠오른다.
황희와 한명회.
두 사람 모두 정승이었고, 두 사람 모두 강가의 정자 이름에 갈매기를 품었다. 그러나 갈매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같지 않았다. 황희는 오랜 벼슬살이를 마치고 물러난 뒤 강가에서 갈매기를 벗으로 삼았다. 한명회는 달랐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갈매기와 가까워지고자 했다. 황희는 물러난 뒤 갈매기를 만났고, 한명회는 물러나지 않은 채 갈매기를 불렀다. 한 사람에게 갈매기는 이미 얻은 한가로움이었다. 다른 한 사람에게 갈매기는 아직 얻지 못한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압구정이라는 이름에는 처음부터 묘한 긴장이 있었다. 권력을 쥔 사람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 세상을 움직이는 정치가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처사. 그 두 사람이 한명회라는 한 몸 안에 함께 살고 있었다. ‘갈매기와 친하다’는 말에는 오래된 고사가 배어 있다. 사람에게 욕심과 속셈이 없을 때 갈매기는 가까이 오지만, 잡으려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갈매기는 멀리 날아간다는 이야기다. 갈매기를 부를 수는 있어도 갈매기를 붙잡을 수는 없다.
한명회는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자에 다음과 같은 제시(題詩)를 걸었다.
胸中靑春常不老 가슴 속 청춘은 항상 늙지 않고
鷗鳥忘機自樂然 갈매기는 욕심을 잊고 절로 즐거워하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방랑하던 시절, 매월당 김시습은 한명회가 압구정에 걸어둔 시판에서 싯구를 수정하여 시의 의미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胸中功名常不老 가슴 속 공명(부귀영화)은 절대 늙지 않는데
鷗鳥知機自飛去 갈매기가 그 속셈을 알고 절로 날아가 버리네
김시습은 ‘자연을 벗 삼겠다고 말하지만, 네 가슴속에는 여전히 권력과 공명에 대한 탐욕이 들끓고 있으니, 강가의 순수한 갈매기조차 네 위선을 알고 도망칠 것’이라는 뼈아픈 비판을 던진 것이다. 이 구절을 본 한명회는 크게 노하여 즉시 시판을 떼어버렸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압구정은 또 다른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겸재 정선이다. 1740년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겸재는 한강 변의 명승을 화폭에 담았고, 그 가운데 압구정도 있었다. 이 무렵 겸재는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과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詩去畫來)’는 아름다운 약속을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이 시를 보내면 한 사람은 그림으로 답했다. 한강의 풍경은 그렇게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다. 겸재가 한강 언덕의 압구정을 그리자, 사천은 시로 화답했다.
푸른 물 강을 따라 넉넉히 흐르고
흰 갈매기는 물결 타고 많이도 노니네
내 마음은 물욕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어찌 세상일이 사람을 그릇되게 만들까 ― 사천 이병연 〈압구정〉
한명회에게 갈매기가 권력자가 얻지 못한 자유의 상징이었다면, 이병연에게 갈매기는 물욕을 내려놓은 마음의 벗이었다. 같은 압구정이고 같은 갈매기였지만,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그 뜻은 달라졌다. 한명회가 갈매기를 불렀고 김시습이 그 갈매기를 날려 보냈다면, 삼백 년 뒤 겸재와 사천은 다시 그 갈매기를 그림과 시 속으로 불러들였다. 그림은 풍경을 남겼고, 시는 그 풍경의 마음을 남겼다.
그토록 모든 것을 가졌던 권력은, 왜 그토록 작고 보잘것없는 갈매기를 부러워했을까. 권력은 세상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갈매기 한 마리의 자유까지 가질 수는 없었다. 한명회가 압구라는 이름을 품은 것도 자신이 얻지 못한 무엇이 갈매기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압구정.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그 이름은 한가로운 갈매기보다 부와 성공, 욕망의 이미지에 더 가까워졌다. 한명회가 살던 시대보다 건물은 높아졌고 사람들이 가진 것은 훨씬 많아졌다. 오늘 압구정에는 옛 정자가 없다. 강변의 모습도 달라졌고, 갈매기가 자유롭게 날던 옛 풍경을 그대로 만나기도 어렵다. 狎鷗라는 두 글자는 오히려 오늘 더 낯설게 읽힌다
경산의 한 줄
정자는 권력자의 것이었지만, 바람과 갈매기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