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 시, 분리수거장에 내려간다. 낮에는 붐비던 자리가, 이 시간이면 한산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고,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섞여 든다.
먼저 온 사람이 말없이 자리를 비켜 준다. 나도 말없이 페트병의 라벨을 벗겨 낸다. 찌그러진 병, 씻어 말린 유리병, 착착 접힌 택배 상자. 버려진 것들에도 저마다 손이 간 흔적이 있다. 서로 얼굴은 몰라도, 요즘 어느 집이 이사를 왔는지쯤은 이 상자들로 짐작이 간다.
같은 동에 몇 해를 살아도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어쩐지, 넘치는 상자를 대신 밟아 접어 주기도 한다. 이름도 모르면서.
빈 병들이 부딪는 소리를 뒤로하고 올라온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나는, 조금 전 그 사람처럼 무표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