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나면 시골집 마당이 바빠집니다. 고추를 널어 말리고, 깨를 털어 자루에 담고, 씨앗은 좋은 것만 따로 골라 처마 밑에 매답니다.

이렇게 거둔 것을 잘 간수해 두는 일을 ‘갈무리’라 합니다. 물건을 챙겨 간직하는 것도, 하던 일을 끝맺어 정리하는 것도 다 갈무리지요.

갈무리에는 다음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먹자고 다 먹어 버리지 않고, 겨울을 건너갈 몫과 이듬해 심을 몫을 미리 떼어 두는 일.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위해 손을 멈추는 일입니다. 그래서 갈무리하는 손은 늘 조금 느립니다. 고르고, 말리고, 덜어 놓는 데 시간이 드니까요.

요즘은 컴퓨터 화면을 저장하는 것도 갈무리라 부릅니다. 말은 이렇게 옮겨 다니며 삽니다.

어머니는 씨앗 봉지마다 매직으로 연도를 적어 두셨습니다. 올해 것인지 지난해 것인지 헷갈리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