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밀어 올리는 매화
-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
묵은 등걸에
풍상이 패이고
여린 가지 곧추서
달을 밀어 올린다
다닥다닥 맺힌 꽃
상처가 밝힌 별빛
남의 붓끝 벗어난 먹빛
조선의 매운 향이 번진다

어몽룡 <月梅圖> 16세기 119.2 * 53 Cm 국립중앙박물관
달빛 아래, 조선의 매화가 서다
달은 둥글지만 밝지 않다. 엷은 먹빛에 싸여 구름 속에 잠긴 듯하고, 스스로 빛나기보다 매화 한 그루를 조용히 비추고 있다. 그 아래에서 매화 가지 하나가 화면을 가르며 하늘로 치솟았다. 옆으로 휘거나 아래로 처지지 않고, 달을 향해 곧고 힘차게 올랐다. 달은 고요하고 매화는 움직인다. 둥근 달의 정적과 곧은 가지의 기세가 만나면서, 텅 빈 화면에는 말 없는 긴장이 흐른다.
그림 아래쪽의 늙은 등걸에는 세월이 깊이 패여 있다. 마른 붓이 지나가며 남긴 희끗한 자국은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드러난 상처처럼 보인다. 한쪽 가지는 꺾였고, 밑동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뒤틀렸다. 화가는 늙은 나무를 쇠락의 표정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고목의 몸에서 새 가지가 돋아나고, 그 여린 가지가 오히려 가장 높이 솟구쳤다.
새 가지에는 꽃과 꽃망울이 다닥다닥 맺혀 있다. 화려하게 활짝 핀 꽃밭이 아니다. 옅은 먹과 짙은 점 몇 개로 꽃의 기척만 남겼다. 매화는 눈에 보이는 꽃이라기보다 달빛 속에서 막 깨어나는 생명처럼 느껴진다. 늙은 등걸이 견디어 온 시간이라면, 새 가지는 그 시간이 마침내 밀어 올린 미래다.
이 그림의 아름다움은 강한 것을 굵게, 약한 것을 가늘게 그렸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가는 가지에 가장 강한 상승의 힘을 실었다는 데 있다. 늙은 나무는 땅 가까이 몸을 낮추고, 연약한 가지는 하늘 높이 뻗었다. 생명의 힘은 언제나 크고 단단한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상처 입은 몸에서 돋아난 한 줄기 여린 가지가 고목 전체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어몽룡은 1604년 진천현감을 지냈으며, 매화를 잘 그려 당대의 이정의 대나무, 황집중의 포도와 더불어 ‘삼절(三絶)’로 불렸다. 대나무와 포도와 매화, 세 식물이 세 사람의 붓끝에서 조선 문인화의 개성으로 피어난 것이다. 어몽룡의 매화는 중국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중국 문인화에서 매화는 흔히 가지가 비스듬히 뻗거나 아래로 드리워진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그는 자신이 보고 느낀 매화의 기세를 곧고 간결한 선으로 표현했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꽃받침이 모두 위를 향해 매화가 아니라 살구꽃처럼 보인다고 혹평했고, 명나라 장수 양호 역시 그림의 격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래로 드리운 가지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중국의 문법으로 보면 어긋난 매화였지만, 바로 그 어긋남 속에서 조선 매화도의 독자적인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을 ‘중국풍을 벗어난 그림’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은 남의 눈으로 보던 매화에서 벗어나 자기 눈으로 본 매화를 그린 일이었다. 예술의 개성은 완성된 전통을 되풀이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익숙한 문법에서 조금 어긋나더라도 자신이 본 것과 느낀 것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당시의 비평가가 결점으로 보았던 곧은 가지와 위로 향한 꽃받침은 오늘날 어몽룡의 개성을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미 당대에 매화의 대가로 이름을 얻어 ‘삼절’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다만 중국의 기준에서는 낯설었던 조선적 개성이 시간이 흐르며 더욱 분명한 가치로 드러났다고 보는 편이 옳다.
오늘날 〈월매도〉는 이정의 〈풍죽도〉와 함께 오만원권 뒷면을 장식하고 있다. 본래 세로로 솟은 그림을 화폐의 가로 화면에 맞게 눕혀 배치했지만, 그 속에서도 매화의 기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때 중국 문인의 눈에 낯설게 보였던 조선의 매화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오가는 화폐 위에서 우리 미술의 얼굴이 된 것이다.
〈월매도〉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달보다 먼저 매화의 몸을 바라보게 된다. 늙은 등걸의 상처와 새 가지의 꽃망울은 서로 다른 시간이 아니다. 상처가 있었기에 새 가지가 돋았고, 오래 견딘 뿌리가 있었기에 여린 가지가 달 가까이 오를 수 있었다. 〈월매도〉의 매화를 아름답게 꾸미지 않았다. 견디고, 꺾이고, 다시 돋아나는 생명의 질서를 그렸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 한 시대의 자의식을 담았다. 남의 기준으로 보면 어긋난 선이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보면 가장 곧은 선이었다.
달빛 아래 한 줄기 매화가 하늘로 오른다.
그것은 꽃을 피우는 가지이면서, 모방을 벗어나 자기다움에 이르는 조선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