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깊이를 묻다
- 세계가 사랑하는 문화,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는가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낯선 나라의 젊은이들이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고, 우리의 영화와 드라마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저녁 시간을 차지한다. 김치를 먹고 비빔밥을 맛보며 한글을 배우는 사람도 늘었다. 궁궐과 사찰을 찾아오는 외국인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한류라는 말이 이제는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열기 속에서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세계가 좋아하는 우리의 문화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물결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국경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한류라는 이름이 없었고 오늘날처럼 빠른 길도 없었을 뿐이다.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은 중국 산수화를 따라 그리는 데 머물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바라본 금강산과 한양의 산천을 그렸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우리 방식으로 표현한 그의 붓질은 단순히 산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한 나라가 자기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선언이었다. 김명국의 그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건넜다. 거칠고 힘찬 붓놀림, 살아 움직이는 필선은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오늘날 K-pop 가수가 비행기를 타고 세계 무대에 오르듯, 그때는 한 화가의 붓 끝이 바다를 건넜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에 이르면 문화의 물길은 더욱 깊어진다. 그의 글씨와 학문은 북경 지식인들과의 깊은 지적 교류로 이어졌다. 종이 위의 몇 획이 국경을 넘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묶어주었다. 인터넷도 방송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문화는 국경을 넘어 흘렀다. 한류는 K-pop에서 불쑥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 옛사람의 붓 끝에서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그 작은 물길은 거대한 강이 되었다. 옛날에는 그림 한 폭이 천천히 바다를 건넜다면, 이제는 영화 한 편, 노래 한 곡이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길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좋은 문화는 사람을 건너가고,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담장을 넘어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오늘의 한류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 자랑스러움 뒤에서 자꾸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세계가 열광하는 우리 문화를 우리는 얼마나 깊이 알고 있을까.
나는 전국 산천의 정자를 찾아다니며 이 생각을 자주 한다. 오래된 정자에 오르면 현판이 있고, 시판이 있고,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남아 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잠시 둘러보고 사진 한 장을 찍은 뒤 돌아선다. 사진에는 정자의 외형이 남지만, 정자에 깃든 사람의 마음까지는 담기지 않는다. 문화재를 사진의 배경으로만 소비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정자 하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곳에서 누가 무엇을 고뇌했는지, 왜 그곳에 기둥을 세웠는지, 어떤 시를 남겨 자연과 삶을 바라보았는지 알아가는 일이다. 이것이 문화의 ‘소비’와 ‘향유’의 차이다. 먹고 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소비라면, 알고 느끼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향유다.
문화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소비를 넘어 ‘애호’가 되어야 한다. 좋아하는 그림 한 점이 있고, 즐겨 찾아가는 문화재 하나가 있으며, 마음에 품은 시 한 편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이미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예술은 반드시 소유할 필요가 없다. 값비싼 그림을 사지 못해도 괜찮다. 좋아하는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있으면 된다. 문화재를 내 소유로 만들지 않아도 해마다 찾아가 그곳의 계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기억하면 충분하다.
우리 모두가 그런 문화재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일찍이 우리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다른 나라를 누르는 강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를 좋아하고 찾아오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다. 오늘 우리는 그 꿈의 한가운데 서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류가 몇몇 뛰어난 예술가와 제작자의 성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화의 힘은 국민의 일상으로 유유히 흘러들어 갈 때 비로소 깊어진다.
세계인이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먼저 깊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류는 아무리 큰 파도를 일으켜도 일시적인 유행의 파도로 지나가 버릴 것이다. 파도는 높지만 오래 머물지 않고, 강은 낮지만 오래 흐른다. 한류가 파도가 아니라 깊은 강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강의 물결보다 발원지가 깊어야 한다. 그 발원지는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우리 동네의 오래된 정자일 수도 있고, 박물관에 조용히 걸린 그림 한 점일 수도 있으며,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옛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전통문화의 현재화'란 박물관에 보관된 옛것을 그대로 꺼내 놓는 일이 아니다. 옛사람의 생각을 오늘의 언어로 읽고, 옛 그림을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며, 옛 공간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렇게 전통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올 때, 우리의 문화는 과거에 갇히지 않고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
세계가 우리 문화를 좋아한다고 기뻐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내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는 그림 한 점, 정자 하나, 시 한 편이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대답을 하나씩 품을 수 있다면, 한류는 유행을 넘어 비로소 시들지 않는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다. 문화강국은 국민 저마다 자기 문화를 먼저 깊이 사랑하는 나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