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둔 자리
가을빛이 차오르는 산기슭, 흙냄새와 바람 소리가 번지는 농원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삶을 채우는 일’보다 ‘남겨두는 일’의 귀함을 배우게 된다.
얼마 전 참석했던 인문학 모임의 화두도 ‘남겨둠’이었다.
고전을 읽고 선현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오늘의 일상을 돌아보는 모임이다.
그날은 현역 시절에 삶을 다 누리며 소진하지 말고, 퇴직 후의 삶을 위해서도 얼마쯤 남겨두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에 빗대니 뜻이 한결 가까워졌다. 전채 요리로 배를 채우면 정작 주된 요리가 나왔을 때는 젓가락이 무거워진다. 후식의 향긋함까지 누리려면 다음 접시가 놓일 자리를 생각하며 먹어야 한다. 한 끼의 즐거움에도 여백이 필요한 셈이다.
삶에도 아직 나오지 않은 음식이 있다.
젊은 날에는 눈앞의 한 접시가 전부인 줄 알았다.
일을 할 수 있을 때 더 해야 했고, 기회가 왔을 때 붙잡아야 했다. 하루를 빈틈없이 써야 잘 산 것 같았다. 그렇게 열정을 쏟다 보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건넬 말 한마디를 아끼기도 했다. 정작 아껴야 할 것은 쓰면서, 써야 할 마음은 아꼈던 셈이다.
퇴직하고 보니 삶의 식탁은 여전히 길었다.
느긋하게 책장을 넘길 아침이 있었고, 아내와 나란히 걸을 길이 있었다.
비선농원의 나무 아래 앉아 아무 일 없이 보내는 한때도 있었다.
그 시간을 누리려면 돈만으로는 부족했다. 걸을 힘과 궁금해하는 마음, 사람을 반길 여유가 함께 남아 있어야 했다.
남겨두는 마음은 농원에서도 배운다.
나는 산기슭에서 나무와 작물을 돌보며 지낸다.
찾아오는 지인이 있으면 그때그때 거둔 것을 조금씩 나눈다.
손에 흙을 묻힌 날들이 누군가의 식탁으로 건너간다고 생각하면 흐뭇하다.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들으면 햇볕 아래 허리를 굽혔던 수고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런데 내가 넉넉히 담아준 꾸러미에서 슬그머니 몇 개를 덜어놓는 지인이 있다.
“저는 이만큼이면 충분합니다.
땀 흘려 가꾼 수고를 생각하면 다 가져갈 수 없지요.
다음에 오실 분들과 나누세요.”
제게 필요한 만큼을 챙기고 다음에 올 이의 몫을 남겨두는 마음.
꾸러미를 가볍게 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그는 가져간 것으로만 나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 남겨놓은 것으로도 내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남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글씨가 하나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 남병길에게 써준 ‘유재(留齋)’다.
‘남겨두는 서재’이라는 그 이름 앞에서 네 구절을 되새겨보았다.
留不盡之巧以還造化 (유부진지교이환조화)
留不盡之祿以還朝廷 (유부진지록이환조정)
留不盡之財以還百姓 (유부진지재이환백성)
留不盡之福以還子孫 (유부진지복이환자손)
다 쓰지 않은 재주를 남겨두어 자연에 돌려주고,
다 누리지 않은 녹봉을 남겨두어 조정에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재물을 남겨두어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 누리지 않은 복을 남겨두어 자손에게 돌려준다.

재주도 녹봉도 재물도 복도, 내게 주어졌다고 끝까지 다 써버릴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네 구절은 모두 ‘남긴다(留)’로 시작해 ‘돌려준다(還)’로 이어진다. 남겨둔 것마다 돌아갈 곳이 있다.
나는 ‘남긴다’는 말씀을 ‘돌려준다’로 읽었다.
내가 지녔다고 해서 모두 내 것은 아니다.
농원의 열매만 해도 그렇다. 내가 심고 가꾸었지만 햇볕과 비를 만들지는 못했다.
뿌리가 기대고 선 흙도 내 손으로 빚은 것이 아니다. 한 알의 열매 속에는 내가 보탠 수고보다 훨씬 오래된 세상의 일이 들어 있다.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에는 받은 것을 조금 돌려보내는 뜻도 있을 것이다.
모임에서 돌아와 농원을 생각했다.
그 지인이 덜어놓고 간 몇 알의 열매, 그 열매를 들고 웃을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직 모른다. 모르기에, 남겨둔 자리가 더욱 정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