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香
- 재주가 덕을 앞지르는 풍경 앞에서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물두 사람이 펼치는 경기를 보다 보면 어느새 선수의 삶에도 관심이 간다. 발끝의 재주에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그 재주를 지닌 사람의 얼굴을 살피게 된다. 골을 넣은 뒤 누구에게 달려가는지, 넘어진 동료에게 어떻게 손을 내미는지, 패배 앞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경기가 끝나도 마음에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의 구설을 접할 때면 가슴이 아프다. 금메달의 영광보다 병역 혜택을 먼저 셈하는 말들이 앞서고, 선후배 사이의 갈등이 경기보다 큰 이야기가 될 때면 응원하던 마음 한쪽이 서늘해진다. 전해지는 이야기만으로 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재주를 아끼는 만큼 그 재주를 담은 마음에도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흥민 선수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축구만이 아니다. 동료를 향해 웃는 얼굴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맑은 기운을 느낀다. 내게 그의 미소는 승부로 팽팽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한 줌의 햇볕이다. 축구를 보다가 사람에게 위로받는 순간이다.
내 곁에도 그런 햇볕을 지닌 사람이 있다.
웃음과 눈물이 많고 표정이 밝다. 남의 평범한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는다. 기쁜 대목에서는 손뼉을 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만나면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말을 건넨 사람은 제 이야기가 그토록 귀한 것이었나 싶어 새삼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는 남의 이야기에 햇볕을 놓아주는 사람이다. 그의 귀를 지나면 사소한 일상에도 빛이 든다.
함께 답사기행을 떠나 안동 농암고택에서 하룻밤 묵었을 때였다. 그는 고택을 돌보는 종손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특별히 꾸민 말도 아니었다. 의미 있는 곳에서 묵게 된 기쁨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종손은 이런 말을 처음 들어본다며 감동했다. 그 한마디 뒤로 종손이 우리 일행을 대하는 눈길이 한결 따뜻해졌다.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도 누구는 시설을 평가하고, 누구는 값을 따지고, 누구는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수고를 알아본다. 그는 오래된 집에서 받은 호의를 그 집을 지키는 사람에게 돌려주었다. 감사의 말 한마디가 낯선 이들 사이에 문을 하나 열었다.

내가 때때로 인문학의 보따리를 풀 때도 그렇다. 그는 입도 열고 귀도 열고 마음까지 활짝 열어 듣는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그 눈빛 앞에서는 어설프게 아는 것을 아는 체할 수가 없다. 한 번 더 책을 펼치고, 기억이 흐릿한 대목을 확인하고, 더 좋은 이야기를 찾아보게 된다. 그는 듣는 자세 하나만으로 나를 공부시키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무언가 더 나누어주고 싶어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벗이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이 차이는 어느새 대화 밖으로 물러났다. 우리는 나이를 잊고 교유하는 망년지우(忘年之友)가 되었다. 배움을 주고받는 동안 누가 스승이고 누가 벗인지도 희미해진다.
그런데 가끔 걱정이 앞선다. 저렇게 순수해서 험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남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믿다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달리 보면 이 걱정도 세상에 길든 나의 편견이다. 왜 착한 사람을 보면 먼저 다칠 일을 떠올리는가. 왜 그의 선함을 힘으로 보기 전에 허술한 틈으로 보는가.
“사람은 착한데.” 우리는 종종 칭찬 뒤에 이런 여백을 남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거나, 눈치가 없다거나, 제 몫을 챙기지 못한다는 말이 뒤따를 것 같다. 착함을 능력의 빈자리쯤으로 여기는 시선이다. 착함을 무능으로 읽는 세상에서는 영악함이 실력 행세를 한다. 그러나 내 벗의 착함은 사람을 움직인다. 농암고택 종손의 마음을 열었고, 내 손에 다시 책을 들려주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곁의 사람을 조금 더 나은 쪽으로 이끈다. 그의 순수함을 걱정하기에 앞서 그 힘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치려 할 때 곁에 서주는 벗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손흥민 선수의 맑은 미소와 내 곁의 다정한 벗을 떠올리며, 나는 오랜 세월 교단에 몸담았던 날들을 펼쳐본다.
아이들이 더 많이 알도록 애쓰는 동안, 다른 사람의 기쁨과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도 함께 길러주었는지 돌아본다. 젊은이들에게 인성이 부족하다고 꾸짖는 것으로 어른의 몫을 다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먼저 물어왔던가. 친구가 힘들 때 어떻게 했는지보다 몇 등을 했는지를 먼저 묻지는 않았는가. 잘못했어도 성적이 좋으면 눈감아주고, 함께 애쓴 사람보다 상을 받은 한 사람에게만 박수를 보내지는 않았는가.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친 뒤, 정작 내 아이가 조금 손해를 보면 왜 바보처럼 양보했느냐고 나무라지는 않았는가.
아이들은 어른의 말과 표정 사이에서 배운다. 공정을 말하는 입술보다 유리한 기회 앞에서 달라지는 눈빛을 더 또렷이 기억한다. 재주만을 좇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뛰어난 재주 앞에서 먼저 원칙을 접은 것은 우리였는지 모른다. 어른이 박수 치는 자리가 아이가 달려갈 방향이 된다.
才勝德, 재주와 덕을 저울에 올려놓는 생각은 오래되었다. 재주가 덕을 앞서면 그 재주가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야 한다. 빠른 발은 사람을 앞서게 하고, 깊은 마음은 앞선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게 한다. 능력이 커질수록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에게는 더욱 깊은 마음의 공부가 필요하다.
그 공부는 교과서의 문장을 일상에서 살아보는 일이다. 친구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일, 도움을 받으면 수고한 사람의 얼굴을 보며 감사하는 일, 이겼을 때 함께 뛴 사람을 기억하고 졌을 때 제 책임을 돌아보는 일. 그런 순간마다 어른이 무엇을 알아보고 귀하게 여기느냐가 아이의 마음에 기준을 세운다.
착함을 그저 참고 양보하는 일로만 가르쳐서도 안 된다. 부당한 요구에는 거절할 줄 알고, 자기 잘못에는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제 마음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란 선함이라야 세상 속에서 오래 제 빛을 지킬 수 있다.
농암고택에서 벗이 건넨 감사는 그 마음의 공부가 일상에 밴 모습이었다. 좋은 것을 좋은 줄 알고, 그것을 마련한 사람의 수고까지 헤아린 데서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인문학 책에서 읽었던 사람의 도리를 그의 짧은 인사에서 다시 배웠다. 그 맑은 언어의 향기가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다.
어제도 그가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그 눈빛을 생각하며 책 한 장을 더 넘긴다. 재주는 박수를 받지만, 착함은 박수 치는 사람을 만든다. 박수를 받다가, 박수를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