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겨울 길목
가장 높은 가지 끝에

아버지가 남긴
따뜻한 등불 하나

움푹 패인 이빨 자국에
가을 하늘이 깊다

해마다 저 붉은 속을 열어
겨울을 먹이던 손

나무에 매달린 밥상
  - 비선농원 가을 끝에서

비선농원의 가을도 끝물이다. 올해도 새들이 절반 이상을 자기들 몫으로 가져갔다. 그들이 가져간 나머지를 거두어 갈무리한다. 봄부터 손에 익었던 연장도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간다. 잎이 성글어진 나무 사이로 바람이 훤하게 지나간다. 한창때는 잎과 열매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가지들이 이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농삿일을 마무리하는 일은 한 해 동안 가려졌던 빈자리를 다시 보는 일이기도 하다.

감나무 높은 가지 끝에 붉은 감이 남아 있다. 몇 알은 온전하고, 몇 알은 속이 움푹 파였다. 저 작은 열매 하나를 익히려고 나무는 여름 내내 얼마나 많은 햇빛을 받았을까. 농사를 짓고부터는 열매를 헤아릴 때 그 안에 든 수고까지 세게 된다. 새가 먼저 다녀간 자리가 때로는 아깝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의 까치밥을 떠올려본다.

아버지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다. 감 한 알에도 쓰임이 있었고, 떨어진 열매도 쉽게 버리지 않았다. 그런 시절에도 높은 가지에는 감이 남았다. 손이 닿지 않아 따지 못한 것과 새를 위해 남겨둔 것이 한 나무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 경계를 일일이 가를 수는 없다. 다만 남은 감을 두고 ‘까치밥’이라 부르는 순간, 그 열매에는 먹을 주인이 생겼다.

그 이름이 새삼 따뜻하다. 사람의 손에 들어오지 않은 열매를 손실로만 헤아리지 않고, 다른 목숨의 한 끼로 불렀다. 수확이 끝난 나무에도 아직 차려줄 밥상이 있다는 생각. 겨울을 앞둔 가지 끝에서 까치밥은 그렇게 붉어졌다. 아버지가 남긴 감을 등불로 기억하는 것은 그 빛깔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은 먹을 것이 흔하다. 계절이 바뀌어도 가게의 과일 진열대는 좀처럼 빈 자리가 없다. 그런데 풍요 속의 까치밥은 예전보다 뜻이 복잡해졌다. 새를 위해 남겨놓은 감도 있지만, 먹을 사람이 없어서, 딸 일손이 모자라서 그대로 겨울을 맞는 감이 많아졌다. 멀리서 보면 모두 아름다운 붉은 점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어떤 감에는 배려가, 어떤 감에는 거둘 힘이 부친 사람의 사정이 매달려 있다.

결핍의 시대에는 사람도 먹고 싶은 것을 남겨야 했다. 풍요의 시대에는 남은 것이 많아도 그것을 나눌 마음까지 넉넉해지지는 않는 것같다.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느냐와 다른 생명의 몫을 생각하느냐는 서로 다른 일이다. 까치밥의 뜻은 감의 개수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오늘에도 아버지의 높은 가지를 돌아보게 되는 까닭이다.

다시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움푹 팬 자국 안으로 가을 하늘이 깊다. 처음에는 상처로 보이던 자리가 이제는 누군가 배를 채우고 떠난 자리로 읽힌다. 열매의 모양은 허물어졌지만, 그만큼 작은 몸 하나가 찬바람을 견딜 힘을 얻었을 것이다. 감은 가지에 매달린 채로도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아바지 나이가 되었다. 어린 날에는 감만 보았던 자리에 이제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한 해의 수고를 거두면서도 나무를 끝까지 비우지는 않던 손. 그 손이 남긴 붉은 온기가 높은 가지에서 아직 겨울을 먹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