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낮게 깔린 물안개
하늘은 황금빛 침묵

 물 위에 가만히 내려앉은

또 하나의 태양

 새들은 날개로

하늘과 땅의 틈을 깁는다

 내 삶의 수면에 뜬

가장 뜨겁고 겸손한 빛 하나

아침의 첫 바느질

 물안개가 나무들의 발목을 덮고 있다. 먼 산은 윤곽만 남긴 채 뒤로 물러나고, 하늘은 소리 없이 금빛으로 번진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아침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밤새 세상이 잠시 풀어두었던 것들이 저 빛 속에서 천천히 제 모습을 찾아간다.

 해가 떠오르자 물속에도 해가 하나 뜬다. 높은 곳에서 온 빛이 가장 낮은 자리에 둥글게 앉아 있다. 물은 그 뜨거운 것을 품고도 끓지 않는다. 잔물결에 조금씩 흔들릴 뿐이다. 나도 저렇게 무언가를 고요히 품어본 적이 있었던가. 마음에 불씨 하나만 들어와도 온통 들끓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때 새들이 날아오른다. 검은 날개들이 금빛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물안개 속에서 흐릿해진 산등성이와 하늘 사이로, 한 땀 한 땀 실이 건너가는 듯하다. 새들은 날개로 하늘과 땅의 틈을 깁는다. 어디선가 밤을 견딘 작은 몸들이 아침의 첫 바느질을 시작한다.

 그 날갯짓에는 허기가 있을 것이다. 먹이를 찾아야 하고, 무리를 따라야 하고, 오늘 머물 곳에 닿아야 할 것이다. 살아가려는 몸짓이 저렇게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 나 역시 내 하루를 살아내느라 분주했을 뿐인데, 돌아보면 누군가의 끼니를 마련했고, 빈자리를 지켰고, 끊길 듯한 안부를 이어온 날들이 있다. 살아온 날의 의미는 그런 작은 자리에 꿰매져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해가 뜬다는 것을 안다. 너무 잘 알아서 커튼도 걷지 않은 채 하루를 시작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제의 물안개는 이미 흩어졌고, 어제의 새들은 저 자리에 없다. 오늘 물 위에 내려앉은 빛도 한 번도 내 눈에 들어온 적 없는 빛이다. 익숙한 풍경 앞에서 자꾸 낡아가는 것은 내 눈이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처음 만나는 것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처음인 줄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늘었다. 같은 길의 나무도 밤새 잎 몇 장을 내려놓았을 테고, 곁에 있는 사람도 어제와는 다른 마음으로 눈을 떴을 것이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미처 묻지 못한 말들이 아침빛에 떠오른다. 오늘은 오래 곁에 있던 사람의 얼굴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 무심히 건네던 인사에도 온기를 한 땀 보태고 싶다.

 새들은 벌써 먼 산 너머로 사라졌다. 금빛 하늘에 바늘이 지나간 자리는 사라졌다. 다만 조금 전보다 세상이 가까워져 있다.